울버린은 눈 깜짝할 새에 상처를 재생한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엑스맨의 탄생: 울버린'에서 울버린의 놀라운 초능력을 보면 놀랍다. 울버린은 어떤 상처를 입어도 순식간에 상처를 복구하여 원래대로 만들어버린다. 누구나 살다보면 손가락이 베이기도 하고 자동차 사고나 병으로 우리 몸의 장기가 심하게 손상되기도 한다.
이때 울버린처럼 우리 몸이 스스로 손상된 장기를 복구하거나 병원에 가서 새로운 장기로 교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낡은 자동차 부품을 교체하듯이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의 수가 2018년에 3만명이 넘는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했다. 이렇게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지만 장기를 주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 그래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가 죽는 환자가 2016년에 1300명이 넘었다. 그렇다면 장기를 기증할 사람만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동물 장기를 이용하거나 공장에서 장기를 만들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으로 인공장기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바로 재생의학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인데 그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인공장기 실험실을 살짝 들여다보자.

◆무균돼지 장기 이식
잘 피어오른 숯불에 돼지 삼겹살을 올려놓고 구워 먹으면 참 맛있다. 요즘은 돼지가 과학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개발하는 연구자들도 종종 돼지를 이용한다. 이 중에 환자에게 이식할 인공장기를 개발하기 위해 돼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 많은 동물 중에서 왜 하필 돼지일까? 바로 사람과 덩치가 비슷하기 때문에 심장이나 간 등의 장기의 크기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을지라도 생쥐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해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원숭이나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 동물이 돼지보다 더 좋기는 하지만 비용이 돼지보다 열 배나 더 비싸고 필요한 정도로 장기가 자라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저렴하고 빨리 자라는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해서 사용하고자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돼지의 장기를 꺼내서 환자에게 이식해 넣을 수는 없다. 돼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세균이다. 우리가 소고기를 구워먹을 때는 살짝만 구워서 덜 익어도 먹는다. 그렇지만 돼지고기는 세균이 많아서 바짝 익혀서 먹는다. 이처럼 세균이 버글버글한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는 없어서 과학자들이 세균이 없는 '무균돼지'라는 것을 연구해서 만들었다.

◆돼지 장기 이식 성공 사례
이렇게 병균 감염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는데도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면역거부반응'이다. 자동차 부품은 망가진 부품을 그 모양과 크기가 같은 새 부품으로 교체해 넣으면 되지만 우리 몸은 자동차보다 많이 복잡하고 정교하다. 우리 몸에 외부로부터 다른 물질이 들어오면 면역거부반응이 작용하여 우리 몸을 안전하게 지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세균이 없는 돼지의 장기라 하더라도 환자의 몸에 이식해 넣는 순간 급성 면역거부반응이 작동하여 이식해 넣은 장기가 죽어간다.
최근에 과학자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는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이 문제도 해결해가고 있다. 그러니까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서 면역거부반응과 관련된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돼지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해도 면역거부반응이 억제되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2009년에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면역거부반응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변형 미니돼지 '지노'를 만들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팀이 형질전환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에 이식하였으며 수술 후 3년 정도 생존했다고 2016년에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우리나라 건국대학교에서도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하여 51일 동안 생존하는 데에 성공했다.
2018년 5월에 중앙일보에 보도된 국내외 기술개발 현황을 보면 이렇다. 우리나라 건국대와 서울대 연구팀은 돼지 각막을 원숭이에 이식하는 데에 성공했다. 중국은 이미 돼지 각막을 인체용으로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유전자 변형된 돼지 신장을 개코원숭이에 이식하여 6개월 동안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국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는 연간 1,000개의 이식용 폐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형 돼지농장의 설계단계에 있다고 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장기 개발
인공장기는 '이종장기', '세포 기반 인공장기', '전자기기 인공장기' 등으로 구분된다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설명한다. 이종장기는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이고 세포 기반 인공장기는 세포와 생체재료를 이용해서 생체 조직과 장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기기 인공장기는 바이오와 기계전자 기술을 융합하여 조직과 장기를 대체할 인공적인 기계장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이종장기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인 세균감염이나 면역거부반응 등의 문제가 원천적으로 없는 방법이 있다. 바로 환자 자신의 세포를 뽑아서 그 세포를 키워서 장기로 만든 다음에 그 환자에게 이식해서 넣는 방법이다. 이런 꿈만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이론적으로 인체의 어떤 장기도 만들 수 있는 분화능력을 가진 세포다.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팀이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근육을 구성하는 근섬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2018년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팔다리의 기능을 잃은 사람의 근육을 치료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대학 병원에서 환자 자신의 몸에서 뽑은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인공 기관을 이식하는 수술이 2011년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최근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인공장기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3D 프린팅 기법으로 신장의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단위인 네프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포항공대에서 3D 바이오잉크를 이용해서 인공근육을 제작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외에도 많은 장기형태를 3D 프린터로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위에 살펴본 것처럼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거나 세포를 이용한 인공장기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환자에게 사용하기는 좀 이르다. 기술적인 보완도 필요하며 동물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시험을 통해 안전한지를 꼼꼼하게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술개발 속도를 보면 인공장기를 환자에게 사용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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