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요즘 마음이 어때요?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 2018  

쿰쿰하게 시작된 하루가 진한 커피 한 잔에 깊어진다 싶더니 뒤엉킨 관계 속에서 헝클어진 실타래가 된다. 어느 박자에 맞추어야 할지 모른 채 오늘도 감정은 실룩거린다.

세월호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5.18 고문 피해자 상담으로 유명한 저자 정혜신은 연세대 출신 정신과 의사다. 잘 나가는 의사 가운보다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을 더 사랑한 그녀는 '당신으로 충분합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등을 집필, 상담이론이 아닌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소박한 집밥 같은 치유에 방점을 둔다. 이 책에서 그녀는 30여 년간의 경험을 집대성, 마음의 허기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왜 우리는 아플까? 주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질병명이 가득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 나라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조직, 단체라는 획일화는 진정한 내가 아닌 만성적 '나' 기근의 상태에 빠지게 하고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된다. 나를 잃은 절박한 순간에, 삶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야' 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

공감은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칭찬이나 좋은 말 대잔치와는 다르다. 무조건 '맞아, 맞아'도 아니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상태다(p.125). 사실이나 시시비비가 아닌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확하게 눈을 포개는 것,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게 현재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는 것이다. '얼마나 힘든 거니?', '그런 마음이구나.' 온전히 내 마음에만 집중해 주는 누군가 있다면 내 마음의 단단한 문은 활짝 열리리라.

하승미 작
하승미 작 '여행은 옳다'

때론 닫힌 문을 더 옥죄는 경우도 있다. 슬프다는 것은, 화가 난다는 것은 숨겨야 할 나쁜 감정이라는 생각. 내 슬픔에 내가 귀 기울이고, 가까운 누군가가 공감해준다면 쌓인 슬픔이 곯아 우울이나 불안으로 커지진 않으련만. 어쩌면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감정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감정은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신호다(p.218).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삶 속에서 나의 속살을 내비칠 기회! 서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상황인지 더듬어 볼 절호의 찬스.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저자의 말대로 '공감'해야 한다. 나에게, 너에게. 허나 공감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타고난 재능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확언한다. 공감은 학습하는 것이라고. 정혜신의 공감은 진심으로 궁금하면 질문이 생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묻고 듣고 또 묻고 듣기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자기 결론이 담긴 질문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질문. 내 주변에 내 마음을 궁금해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저자는 또 말한다. 똑같이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다르게 느끼더라도 상대의 감정을 기꺼이 이해하고 수용하면 된다고(p.269).

롤러코스터 같은 나의 마음, 마음이 어떤지 물어주기 바라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전한다. 요즘 마음이 어때요?

하승미 책 읽는 사람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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