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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세금을 덜 풀어 경제가 안 풀리나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 실적이 좋아 증세나 국채 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정부의 직무유기고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많이 들어본 듯한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올해가 아니다. 2년 전. 정확히 2017년 6월 12일 국회에서다. 소위 일자리 추경을 요구하며 했던 말이다.

일자리 추경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대통령은 일갈했다. "해법은 딱 하나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는 적정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 재난 수준의 경제 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지도 모른다."

갓 취임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80%를 넘어설 때다.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은 컸다. 국회는 11조2천억원의 일자리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일자리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분배는 악화했다.

문 대통령은 실용적이지 않다. 올해도 또 추경안을 국회에 넘겼다. 취임 후 내리 3년째다. 이번에는 6조7천억원짜리다. 여기엔 3조6천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까지 예고돼 있다. 올해 본예산은 역대 최대인 470조원 규모로 슈퍼예산이라 불렸다. 이 역시 아직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추경은 타이밍과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추경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효과가 반감되고 선제적 경기 대응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국회를 닦달하고 있다. 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 이달 들어서만 여섯 번이다. 이쯤 되니 경제 실정을 추경을 제때 통과시키지 않은 야당 탓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인다. 추경을 하지 않아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면 앞에 벌어진 일이 뒤따른 일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인과 설정의 오류다.

호미를 들먹이며 천문학적 세금을 썼지만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3월 기준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5.1%로 최악이다. 세금으로 만든 60대 이상 취업자는 30만 명이 늘었고 30, 40대 일자리는 2개월 연속 20만 명대로 감소했다. 세금을 퍼부어 노인 일자리는 만들었어도 좋은 일자리는 만들지 못했다. 수출은 부진하고 경상흑자는 6년 9개월 만에 최저다. 올 1분기엔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OECD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까지 낮췄다. 경제정책에 F학점을 주며 대한민국 부도 위기를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돈을 더 풀자 국가 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키웠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GDP 대비 국가 채무 40% 선을 넘기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이 커진다. 문 대통령 스스로 야당의원 시절 이를 질타한 바 있다. 이미 이 비율은 40% 문턱에 와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이면 41.8%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세금을 덜 써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로 나빠진 것이다. 세금으로 일부 경제지표를 눈속임할 수는 있어도 경제 실정을 다 가릴 수 없다. 돈 더 쓰게 해 달라고 야당을 들볶기보다 대통령이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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