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살려!"라는 소리가 나면 모두 그 방향으로 돌아본다. 우리는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어서 소리를 들으면 어느 방향에서 나는 것인지 금방 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가 북쪽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왜냐면 우리 머릿속에는 나침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선 곳에 가면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속에 나침반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따뜻한 모래사장의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가서 5년 동안 1만 킬로미터 이상 먼 거리를 돌아다니다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해변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는 바다거북. 계절을 따라 대륙을 넘나들며 이동하는 철새와 편지를 잘 전달해주는 비둘기. 이들의 몸속에는 지구의 자기장을 인식하는 나침반이 들어있어 아주 먼 거리의 길도 잘 찾아간다.
놀랍게도 박테리아 중에도 나노자석이라는 나침반을 가진 녀석들이 있다. 최근에는 이 자석박테리아를 암이나 여러 질병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도대체 자석박테리아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자석박테리아가 어떻게 질병치료에 이용되는지 살짝 들여다보자.
◆자석을 가진 박테리아
또각또각 부러지는 일본어 억양의 영어로 자기 연구를 설명하는 일본인을 만났다.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있는 줄줄이 엮인 소시지 같기도 하고 진주목걸이 같기도 한 모양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것이 박테리아라고 그는 말했다. 아주 작은 자석들이 줄줄이 연결된 것이 박테리아의 세포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아주 작은 박테리아 세포 안에 진짜 자석들이 줄줄이 엮여서 들어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필자는 15년 전 어느 학술대회에서 자석박테리아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75년에 리차드 블랙모어에 의해서 처음으로 바닷속에 살고 있는 자석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 이후 바닷속뿐만 아니라 호수나 하천 등의 진흙 속에도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자석박테리아들도 발견되었다. 이 박테리아 몸속에 자기장을 인식하는 나노 크기의 결정체들이 들어있다. 이 박테리아는 0.003 밀리미터 정도의 몸길이를 가지는데 그 안에 0.00004 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나노자석을 10~20개 정도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 연결된 형태로 가지고 있다.

◆암 치료에 자석박테리아 이용하기
암 환자는 종종 항암제 부작용 때문에 고생한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항암제 약물이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어떻게 하면 항암제 약물을 암세포에게만 전달할 수 있을까? 택배를 배달해주는 것처럼 누가 약물을 암세포에게만 정확하게 전달해주면 좋을텐데.
미국 국립 생의학이미지 및 의공학 연구기관(NIBIB)의 마르텔 연구팀이 자석박테리아를 이용해서 암이나 종양의 치료 약물을 효과적으로 암세포에 전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얻어서 2016년에 네이처 테크놀로지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러니까 이 연구팀은 약물을 암세포에게 전달해주는 택배기사 역할을 자석박테리아가 할 수 있다는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이후 마그네토코쿠스(Magnetococcus marinus)라고 불리는 자석박테리아를 이용해서 약물을 암세포에만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이 자석박테리아는 두 가지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석박테리아 몸속에 있는 매우 작고 길게 연결된 여러 개의 나노결정체 자석들이 나침반의 바늘처럼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이동해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산소 농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산소가 희박한 곳으로 이동해갈 수 있다.
살아있는 자석박테리아에 약물을 붙여서 암세포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연구원들이 실험했다. 약물을 가진 70 마리의 살아있는 자석박테리아를 만들어서 암에 걸린 생쥐에 주입한 후 컴퓨터로 자기장을 조절하며 지켜봤다. 약물을 가진 자석박테리아의 55%가 암세포 덩어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관찰되었다. 자석박테리아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작은 나노바구니에 약물을 담아서 암세포에 전달하면 2% 정도밖에 전달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박테리아가 약물을 가지고 우리 몸속을 돌아다녀도 해롭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연구원들은 생쥐에 주입된 박테리아는 30분 내에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한다고 해서 우리 몸에 해롭지 않다고 설명한다.

◆줄기세포 조종하기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여러 장기 세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그런데 줄기세포를 어떻게 특정 장기에 가도록 보낼 것인지가 문제다. 가령 심근 경색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심근 줄기세포를 심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냥 보내면 대부분은 혈액을 통해 빠져나가 버린다. 주입한 줄기세포 중 5 퍼센트 정도만 목표 부위에 안착한다는 연구결과가 2004년에 란세트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위에서 나노자석을 가지고 있는 자석박테리아를 외부에서 자기장으로 조절해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보내는 것을 살펴봤다. 안타깝게도 줄기세포는 세포 안에 자석이 없어서 외부 자기장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줄기세포에 자석을 넣어주는 것은 어떨까? 최근 과학자들이 이런 꾀를 냈다. 그럼 자석을 가져다가 열심히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서 줄기세포에 넣을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석 가루 하나의 크기가 줄기세포 하나 만큼이나 커서 불가능한 방법이다.
서울대학교 박태현 교수 연구팀은 자석박테리아의 나노자석을 뽑아서 줄기세포 안에 넣으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즉 자석박테리아를 많이 배양한 후 박테리아를 깨뜨려서 나노자석만 모았다. 이후에 나노자석을 줄기세포가 자라는 배양액 용액에 풀어놓아서 줄기세포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세포 안으로 나노자석이 들어가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세포 안에 나노자석이 많이 들어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후 나노자석을 가진 세포들이 네오디뮴 영구자석 쪽으로 끌려오는 것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이 연구결과를 박태현 교수 연구팀은 2006년에 발표하였으며 특허출원도 했다.
최근 자석박테리아를 이용해서 암이나 심장질환 등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 기술이 좀 더 발전하여 언젠가 환자의 여러 병을 실제로 치료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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