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가 29억원을 들여 치른 신라문화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신라문화'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여느 지역축제와 차별화하지 못한 채 행사 숫자만 늘려놓은 '슈퍼마켓식 축제'라는 것이다.
1962년 시작해 올해로 47회째를 맞은 신라문화제는 경주시가 대표 축제로 내세우는 행사다. 올해는 '신라 화랑에게 풍류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난 3~9일 경주 황성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경주시는 폐막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신라 천년의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지난해와 달리 차별화된 기획과 독창적인 콘텐츠로 알차게 추진해 대한민국 최고 명품축제로 부상했다"며 "9개 분야 44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상반된 평가가 터져나오고 있다. 시민들은 신라문화제만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1960, 70년대 신라문화제의 백미는 퍼레이드였고, 시민과 관광객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신라 왕 행차'를 테마로 한 퍼레이드 전통은 이어지고 있지만 '신라 복장을 한 이들이 걸어가는 수준'이라는 게 시민들의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전문가 A씨는 "수원화성문화제의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은 내용이 명확하고 행렬 전체의 통일성이 있는 반면, 신라문화제 행렬은 순서와 내용이 엉성하고 올해는 대형 삐에로 인형까지 등장하는 등 유기적인 통일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라문화'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많은 이들이 문제점으로 꼽았다. 축구의 효시로 꼽히는 신라축국 경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라 K-팝 커버댄스 페스타', '신라의 향기 꽃 축제', '신라 먹거리장터' 식으로 다른 지역축제에서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신라'라는 이름만 붙인 게 상당수라는 것이다.
전통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마저도 고증이나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은다. 신라 때 부녀자들이 패를 나눠 옷감을 짜던 풍습인 길쌈놀이를 재현한다며 길쌈과는 전혀 다른 가베놀이를 하고, 축국 경연의 경우도 단순히 신라시대 복장을 하고 축구경기를 하는 식이다.
경주시는 올해 '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진 관광축제'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주민 참여 행사로 기획한 읍·면·동 대항 소망돌탑쌓기 대회는 애초 기획과 달리 행사 며칠 전 주최측이 굴삭기를 동원해 쌓아버렸다.
게다가 외부 관광객 참여를 유도하도록 기획했다지만 '관광객은 행사장이 아닌 황리단길 등 관광지에서 북적였다'는 지적도 적잖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반응이 좋았다는 게 경주시의 입장"이라고 했다.
공연전문가 A씨는 "반세기 동안 축적한 노하우가 뭔지 묻고 싶을 정도"라며 "자화자찬만 해서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이벤트가 아닌 문화제가 될 수 있도록 경주시는 연구와 고민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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