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재와 과거 공존, 대구에 '카멜레존' 투가든 등장

고성동 폐공장 고친 장소에 , 다양한 업태 상호작용이 특징
새로운 경험 원하는 소비자, '공간'으로 승부 보려는 업계 모두 윈윈

지난 10월 30일 저녁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지난 10월 30일 저녁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투가든'이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김윤기 기자

하나의 공간에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거나, 다양한 업종이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는 '카멜레존'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업계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두 가지 모두를 접목한 사례가 대구에서 등장해 눈길을 끈다.

◆폐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마트24는 지난달 16일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과 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투가든'을 개장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옛 공장과 창고 구조물을 살린 1천980㎡ 면적의 매장에 이마트24 편의점, 베이커리 카페 '나인블럭', 스테이크 레스토랑 '선서인더가든', 꽃가게 '소소한 화초 행복', 북카페, 레고샵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매장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는 '카멜레존'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카멜레존은 주변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구역을 뜻하는 영어 '존'의 합성어로 공간의 용도를 변화시키거나 재생, 협업 등을 통해 기존 공간의 성격이나 기능을 넘어 새롭고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사례를 뜻한다. 폐공장이나 폐교 등 용도를 다해 버려진 공간이 예전의 구조와 외형을 상당부분 유지한 채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도 카멜레존의 유형 가운데 하나다.

투가든이 자리잡은 건물은 의약품공장과 창고로 쓰이다 20년 가까이 용도를 잃고 사실상 버려져 있던 곳이다. 대구 북구청이 2017년부터 지역 내 근대 산업유산을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진행한 연구용역 프로젝트 '대구근대산업관광 아카이브작업 및 콘텐츠 개발'에서도 근대 산업 건축물을 활용한 창업 리노베이션 지원대상으로 구상하기도 했다.

30일 오후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30일 오후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투가든' 앞을 지나는 사람들. 오래된 물탱크를 색칠해 레고 인형 머리 모양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김윤기 기자

투가든이 입점하며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됐지만 오래된 건물이 주는 특유의 정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편의점 천장부 폐목재 위에는 전구가 걸려 복고풍 스탠드로, 건물 옥상에 있던 노란색 물탱크에는 눈과 입을 그려 '레고' 상징물로 재탄생시켰다. 북카페와 편의점을 잇는 복도에는 오래된 창틀과 이빠진 유리창이 그대로 걸려 있고 대들보 상량문에 한자로 적힌 단기 4292년(서기 1959년)도 눈길을 끈다.

◆상호작용이 만드는 다양한 색깔

이 곳은 현대와 과거의 공존 뿐만 아니라 매장 구성 측면에서도 카멜레존의 특성을 보여준다. 약 145㎡ 규모의 편의점에는 400여종의 와인을 갖춘 36㎡ 크기의 창고형 와인샵이 함께 있다. 편의점 직원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커피나 스무디 등 음료도 만들어 제공한다. 편의점 안에만 와인샵, 카페까지 3가지 업태가 공존하는 셈이다.

편의점뿐만 아니라 함께 입점해 있는 카페, 베이커리, 레스토랑, 화원, 북카페, 레고샵도 공간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유기적인 연결을 보여준다. 투가든의 내부 대부분은 통로가 있거나 안이 들여다보이는 형태로 개방감 있게 만들어졌다. 중앙에 있는 정원을 통해서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대구 북구 고성동의 폐공장을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투가든' 내부에 마련된 공용 테이블. 왼쪽으로는 북카페와 레고샵이, 오른쪽으로는 베이커리 카페가 이어진다. 김윤기 기자

점포들은 기능적으로도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입점해 있는 점포의 성격이 다양해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카페와 레고샵 사이에 위치한 북카페에는 22석의 공용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레고를 조립할 수 있다. 화원에서 운영하는 꽃꽂이 수업을 들을 수도, 편의점에서 사온 간단한 먹거리를 즐길 수도 있다. 혹은 와인샵에서 구매한 와인은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코르크 차지'를 내고 마실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업종이 모여 만드는 상호작용은 주말이나 평일, 점심 시간이나 저녁시간마다 시시때때로 카멜레온처럼 다른 색깔을 투가든에 불어 넣는다.

카멜레존은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동시에 B2C업체에는 테스트베드로서의 기능도 제공한다. 이마트24 관계자는 "투가든은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테스트베드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며 "편의점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나인블록의 커피나 선서인더가든의 스테이크를 이마트24에서 판매하는 액상커피나 도시락 제품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멜레존은 왜 등장?

협업이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신선한 체험을 원하는 소비자의 발길을 끄는 사례는 이 밖에도 다양하게 목격된다. '빨래를 하는 동안 커피를 즐긴다'는 콘셉트로 세탁소와 카페가 공존하는 서울 이태원의 '론드리 프로젝트', 은행창구와 북카페를 조합한 KEB하나은행과 북바이북의 '컬처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떠오르는 카멜레존의 등장 이유에는 온라인 채널이 제공하지 못하는 오프라인 채널의 강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고르게 있어 가족단위로 찾더라도 만족감이 높다는 특징도 있다. 아울러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10~30대 젊은층이 정형화된 공간보다 신선한 복합문화공간을 선호하는 것도 요인 중 하나다.

대구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는 "식사, 휴식, 문화체험 등 복합문화 공간은 온라인을 통한 소비가 제공하지 못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며 "단순한 상품 판매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과 정서적 경험으로 소비자를 잡아두는 방안을 찾는 것이 유통업계의 과제인 상황에서 카멜레존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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