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이 다 되어가는 시어른께서는 하루가 무척 길다 한다. 그런데 세월은 너무 빠르다고.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는 필자에게도 세월은 쏜살같다. 하루하루는 책장을 넘기듯 휙휙 넘어가고 한 해는 중간중간 읽다가 걸리고 마는 총 365페이지로 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이다. 시간의 지표가 되는 시계는 정확히 째깍거리는데 시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얼까.
시간이 절대적이 아님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에 의하면 시간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게 느끼는 물리량이다. 예를 들어 빛이 위아래로 수직운동을 하는 빛 시계를 가진 한 사람이 기차역에 서 있고 같은 종류의 시계를 가진 다른 사람이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명기차를 타고 일정 속도로 가는 상황이라면, 서 있는 사람이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빛 시계를 볼 때 상대방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기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기차 안의 빛이 비스듬히 이동해 더 먼 거리를 가는 것으로 보여서다. 속도는 시간당 이동 거리를 말한다. 빛의 속도가 초당 30만㎞로 불변이라면 빛의 이동거리가 늘어날 때 시간도 늘어난다. 즉 시간이 느리게 간다. 서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움직이는 행위로 시간의 상대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은 그가 빛의 속도로 근접해 등속운동을 할 때 확실한 차이를 나타낸다. 기껏해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최대 이동속도인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시간 지연 현상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빠르게도 혹은 느리게도 느끼는 우리의 내적 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시간일 수 있다.
시간은 더디 가나 세월은 빠르다는 시어른께서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주로 창밖의 풍경으로만, TV 속 화면으로만 세상의 변화를 느낀다. 일상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무료한 하루는 시간을 더디 가게 만들고 근자의 사건은 기억의 공간에서 희미하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정보 혹은 사건의 양이라고 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많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정보가 기억으로 편입되지 못하면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으로 느낀다. 세월이 화살 같다면 일상에서 기억할 만한 새로운 변화가 없는 건 아닌지 되짚어보아야 할 일이다.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간에 대한 책을 쓴 슈테판 클라인은 그의 저서에서 그 원인을 효율성의 관점으로 풀어가고 있다. 유소년기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 경험하는 대부분이 기억에 저장될 수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지면 일상의 평범한 경험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기억 속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은 두뇌의 효율성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도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세월이 총알 같다는 느낌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시간에 대한 철학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형식으로 써 내려간 '모모'라는 소설이 있다. 작품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튼 모모에게 가보게!' 라는 말을 한다. 모모와 함께 있으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성공과 꿈을 좇아 지치도록 일만 하는 시간의 노예로 돼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모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차 성공과 부를 이뤄가지만 까닭 모를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꿈을 이루는 때라고 생각한다.
아끼고, 아깝고, 낭비하고, 절약하고, 투자하고. 시간을 따라다니는 단어는 돈과도 함께 다닌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목표와 수단이 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회복이란 측면에서 보면 시간은 돈과 같을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 그것은 어쩌면 더 가치로웠을 무언가를 다른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고 만 시간이다. 그것이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간의 상대성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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