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 좀비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민주주의는 그 향유자들이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언제든 사멸한다. 가장 비극적 사례가 1933년 3월 24일, 모든 법률의 제정·개정·폐지 권한을 행정부에 일임한 '수권법'(授權法·정식 명칭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한 법')의 독일 의회 통과다. 이는 히틀러 독재의 헌법적 장애물을 깨끗이 치워버린, 독일 민주주의의 '자살'이었다.

자살인 이유는 사회민주당과 이미 의원들이 체포돼 의회에 출석할 수 없었던 독일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당, 사민당, 공산당에 이은 원내 제4당인 가톨릭중앙당의 찬성은 뼈아팠다. 이 당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수권법은 통과될 수 없었다.

자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권법 통과 후 중앙당을 시작으로 모든 정당이 자진 해산했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그전에 불법화됐다.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나치 일당 독재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슬프게도 정당들은 이를 편안해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이 야기한 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이 그 배경이었다.

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그 심리를 이렇게 기술한다. "이것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 민주주의란 게 대체 무엇인가? 당시 대부분의 민주주의 정치가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권좌에서 물러나자. 우리가 정치적 삶에서 물러난다. 우리가 없어져야 한다."('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문재인 정권의 공수처법 수정안을 밀실에서 합의해 준 이 땅의 군소정당의 행위도 민주주의의 자살이다. 수정안은 문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원천 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조계 친위 세력들이 공수처에 대거 포진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그리고 외부건 내부건 견제 장치는 모두 없앴다. 말 그대로 문 정권의 '정치보위부'이고 '게슈타포'이다.

군소정당들은 '밥그릇' 욕심에 눈이 멀어 이에 합의해줬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정치 좀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좀비들이 툭하면 '민주주의'와 '국민의 뜻'을 입에 올린다. 이젠 웃음도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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