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헌혈견, 공혈견에겐 휴식을 친구에겐 새생명을

헌혈견 달순이(그레이트 피레니즈,7년생). 달순이는 매년 정기건강 검진을 받으며 헌혈을 한다. 달순이의 건강 피는 수혈이 필요한 반려견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헌혈견 달순이(그레이트 피레니즈,7년생). 달순이는 매년 정기건강 검진을 받으며 헌혈을 한다. 달순이의 건강 피는 수혈이 필요한 반려견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반려견도 과도한 출혈로 빈혈이 심해지면 수혈을 해야 한다. 대부분 급한 상황이지만 사람처럼 혈액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혈액을 구입하거나 주변의 큰 개 보호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도 1960년대 전후 전쟁과 가난으로 궁핍한 시절에는 혈액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가장들이 있었다.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자신의 혈액과 장기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받는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혈액을 사고파는 행위는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이제 헌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수혈받고있는 반려견 쭈루(시츄.17Y). 체형이 큰 헌혈견에게서 건강에 무리없이 채집한 혈액은 여러마리 소형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헌혈견의 기준을 25kg 이상의 대형견으로 정하는 이유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수혈받고있는 반려견 쭈루(시츄.17Y). 체형이 큰 헌혈견에게서 건강에 무리없이 채집한 혈액은 여러마리 소형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헌혈견의 기준을 25kg 이상의 대형견으로 정하는 이유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반면 동물의료에 필요한 혈액은 아직도 공혈견에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공익적인 목적을 지향하지만 공혈견에게서 혈액을 채취하여 동물병원에 혈액을 판매하고 있는 영리 사업체이다. 공혈견은 동물혈액은행의 자산이며 공혈견에게 혈액을 채혈하고 공혈견을 처분하는 권리도 회사가 가지고 있다. 현행법상 동물의 생명권은 보장되지 않으며 소유자의 물건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물혈액은행도 생명 윤리를 바탕으로 공혈견의 복지를 배려하고는 있지만 공혈견의 선별 과정에서 배제되는 개, 나이가 들어 공혈견으로 부적합해진 개의 노후 보장은 충분히 배려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의 헌혈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듯이 이제는 반려견 수혈도 반려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헌혈견은 공혈견의 희생을 줄여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공혈견에 의한 혈액 공급 비중 보다 헌혈견에 의한 혈액 공급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헌혈견은 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견주의 결정이다. 헌혈견 또한 헌혈을 강요받고 고통스러워 하진 않을까? 이러한 딜레마를 줄이기 위해 헌혈견으로 참여하는 개의 성격과 체형을 고려하고, 헌혈견이 보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연계동물병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공혈견에게는 휴식을 친구에게는 새생명을. 헌혈견은 공혈견의 희생을 줄여주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헌혈견과 그 보호자를 존경하는 시민 문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공혈견에게는 휴식을 친구에게는 새생명을. 헌혈견은 공혈견의 희생을 줄여주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헌혈견과 그 보호자를 존경하는 시민 문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헌혈견은 건강한 2살 이상 8살 이하의 반려견으로 체중이 25kg 이상이 되어야 한다. 채혈 과정이 편안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온순한 성격이 중요하다. 채혈 과정은 30분 정도로 200~400cc의 혈액이 채집된다. 채혈 횟수는 일년에 1회로 한정한다.

헌혈견은 채혈하기 전 건강 검진을 받는다. 연계동물병원에서 건강상태를 평가해주며, 개의 혈액형을 알려주고, 심장사상충과 진드기매개 감염을 예방하고, 정기예방 접종과 구충을 해준다. 헌혈견이 건강해야 건강한 피가 수혈되기 때문이다. 뜻을 함께하는 여러 후원업체의 후원 물품들도 나눠드린다. 헌혈견과 견주의 헌신에 대한 작은 보상인 셈이다.

헌혈은 생명을 살리는 숭고함이 담겨져있다. 그 숭고함을 강요하다 보면 공혈견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헌혈견은 공혈견의 희생을 줄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대안이며 반려동물문화의 가장 원숙한 단계라 할 수 있다. 헌혈견과 견주를 존경하고 응원하는 시민 문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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