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은 지 만 20년째다. 평생 피울 담배를 이미 다 피웠다는 반성 겸 자각에서 20년 전 이맘때쯤 내린, 지금 돌아보아도 뿌듯한 결단의 결과이다. 끊은 후 한동안은 미련이 있었지만, 이제는 몸이 담배와 완전히 절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를 피운 사람과 오래 이야기를 하거나 차를 같이 타고 가면 기관지가 예민해지며 날이 서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일종의 몸이 반응하는 거리두기이다.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마음(정신)보다 나이가 훨씬 더 먹었다. 따라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마음은 안 그런데 미안하게도 노련한 몸이 상대를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멀리하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럴 때는 상대에게 그런 몸의 완강한 손사래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겪은 체험 가운데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없는 사람들은 여름이 겨울보다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안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더운 날씨에 좁은 감방에서 옆 사람과 붙어 있어야 하는 고통 때문이다. 그럴 때는 서로 닿지 않으려고 칼잠 자세로 누운 옆 사람이 사람이기보다 단지 36.5℃짜리 열 덩이로만 느껴진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녹이는 추운 겨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이것도 이를테면 몸이 행하는 거리두기인 셈이다.
거리두기는 모든 생명이 취하는 생존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식물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최적화된 상태로 군집을 이루고, 동물도 생존에 필요한 생활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거나 공격적이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 점에 착안하여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거리두기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4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친밀한 거리'로서 45.7㎝ 미만이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스킨십이 자연스러운 관계의 이상적인 거리이다. 둘째는 '개인적인 거리'로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45.7㎝~1.2m 정도의 구간이다. 친구처럼 친밀하기는 하지만 얼마간의 예의도 요청되는 관계이다. 다음은 '사회적인 거리'인데, 1.2~3.8m 사이이다. 직장 동료처럼 의도하지 않으면 서로 닿을 필요가 없는 관계에서 성립한다. 마지막은 '공적인 거리'이다. 말 그대로 공적인 일로 만나는 관계의 거리로서 3.8m 이상이다. 이렇게 수치까지 세밀하게 확정하다니 역시 사회과학자답다고 웃어버릴 수도 있지만,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일면도 있다. 연인과 손잡고 데이트할 때와 만원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몸이 닿을 때 느끼는 감정의 반응 양태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니 말이다.
근래 새로운 거리두기가 화제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2m'라는 거리이다. 상대와 2m 이상 떨어져 있으면 바이러스로부터 전염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나온 수치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부르며, 누구나 지키기를 권장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심상치 않은 코로나19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행동 요령 중에 하나라니 지키기는 지켜야 할 거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든다. 이런 캠페인이 혹시 사회적으로 은연중 타인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부추기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이다.
그러지 않아도 인터넷을 보면 중국인이나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의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배설되고 있는 것을 본다. 또 유라시아 대륙 저쪽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혐오적인 행동들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를 배척하고 증오해야 쟁취되는 것이라면 그런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쪼록 몸의 거리는 띄우되, 마음의 거리는 더 좁혀야 할 때이다. 작금의 사태로부터 우리가 얻는 가외의 깨우침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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