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유통가 '바이미 신드롬'

소비 패러다임 소유→관여, ‘나에 의해(By-me)’ 만드는 브랜드 각광
팬슈머 요청 즉각 반영, 제품 출시과정 참여
“지나친 신드롬은 경계해야”…우려 목소리도

가수 양준일을 엘클럽 서비스 모델로 발탁한 롯데홈쇼핑. 롯데홈쇼핑 제공.
가수 양준일을 엘클럽 서비스 모델로 발탁한 롯데홈쇼핑. 롯데홈쇼핑 제공.

유통가에 '바이미(By-me) 신드롬'이 불고 있다. 소비 패러다임이 단순히 소유하고 경험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여와 변화로 바뀌면서 소비자는 '나에 의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팬과 소비자의 합성어 '팬슈머(Fansumer)'에 의해 조성되는 바이미 신드롬에 유통업계는 제품 출시 전 과정에 소비자를 참가시키고 소비자 요청을 즉각 반영해 제품을 내놓는 등 마케팅 전략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양준일 발탁한 롯데홈쇼핑, '앵그리 RtA' 내놓은 농심

바이미 신드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를 발 빠르게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롯데홈쇼핑은 최근 '탑골지디'로 불리며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가수 양준일을 유료회원제 서비스 엘클럽의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1990년대 활동했던 양준일의 패션과 음악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다시금 화제가 되자 모델로 선정한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앞으로도 팬슈머가 공감하는 콘텐츠를 지속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농심 앵그리 RtA. 농심 제공.
농심 앵그리 RtA. 농심 제공.

농심은 팬들이 만든 재밌는 별칭을 제품 공식 명칭에 반영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 팬들이 영화 기생충 속 등장하는 라면 '너구리'를 'RtA'(너구리를 뒤집은 글자 모양)로 잘못 읽자, 농심은 이를 놓치지 않고 한정판 신제품 '앵그리 RtA'를 출시했다. 너구리보다 3배 매운 앵그리 RtA는 지난달 출시 2주 만에 400만 개 이상이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오리온은 팬슈머의 요청으로 단종된 제품을 다시 내놨다. 지난 2016년 오리온은 인기 과자 '치킨팝' 생산 공장이 화재로 소실돼 판매를 중단했으나, 맛을 잊지 못한 소비자들이 줄기차게 재출시를 요청하자 지난해 2월 3년 만에 양을 10% 늘려 제품을 재출시했다. 치킨팝은 재출시 7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천만 봉지를 돌파하며 성공을 거뒀다.

오리온 치킨팝. 오리온 제공.
오리온 치킨팝. 오리온 제공.

◆팬슈머 크리에이터가 콘텐츠 기획, 직접 제품 만들기도

바이미 신드롬은 기업이 소비자 요청을 반영하는 것에서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기획하고 제조하는 형태로 진화한다.

뷰티 쇼핑플랫폼 서울스토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팬슈머의 입장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마이큐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기획과 제작, 유통과 홍보, 마케팅 등 제품 출시 전 영역을 소비자에게 맡겼다.

서울스토어는 지난해 9월 유튜버 '데일리제나'가 직접 기획한 앨리스마샤 핸드백을 내놓았고, 프로모션 기간 2주 동안 매출 1억원을 달성하며 화제가 됐다. 이 기간 데일리제나의 구독자도 약 3만명 증가했는데, 이는 팬슈머와 브랜드가 동반 성장한 상생 모델로 평가된다.

닥터자르트 펭집사 이벤트 시즌2. 닥터자르트 제공.
닥터자르트 펭집사 이벤트 시즌2. 닥터자르트 제공.

유튜버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자르트는 도자기 모양으로 가마에서 구워 낸 '세라 펭귄'을 팬슈머가 입양하는 '펭집사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닥터자르트는 올해 '펭집사 이벤트 시즌2'로 펭귄 모형을 입양할 수 있는 그림 공모전 '닥자랑 아트해세라'를 열어 300개 이상의 작품을 접수하는 등 인기를 이어갔다.

◆대형마트도 바이미 마케팅

주로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대형마트도 바이미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홈플러스는 펜슈머 트렌드를 반영해 맥주와 소믈리에의 합성어인 '맥믈리에'를 선발했다. 26명의 맥믈리에는 지난해 8월부터 격월로 시음회에 참석해 신제품 출시를 앞둔 맥주를 마시고 평가했다. 맥믈리에의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 출시된 '맥믈리에 PICK' 제품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매출 중상위권의 우수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홈플러스는 앞으로도 맥믈리에를 통한 맥주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마트24 또한 최근 자체브랜드(PB) '아임이 이천쌀 아이스크림 컵'을 내놨다.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 '이천쌀콘'에 아이스크림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마트24는 이천쌀콘보다 쌀알과 유지방 함유량을 2배 늘려 아임이 이천쌀 아이스크림 컵을 출시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홈플러스 맥믈리에 Pick. 홈플러스 제공.
홈플러스 맥믈리에 Pick. 홈플러스 제공.

◆"지나친 신드롬은 경계해야"

소비자가 제품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바이미 신드롬에 지나치게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이미 신드롬은 팬슈머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급하고 제품을 지지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 간섭과 견제 기능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특징인데, 잘못하면 열렬한 지지자가 한 번에 안티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 인플루언서(온라인 활동으로 영향력 높은 일반인)가 제작에 참여한 브랜드 제품을 소비자가 구매해 문제가 생겼을 때, 이 거래에 관한 책임은 오롯이 소비자 혹은 업체가 져야 한다는 것.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바이미 신드롬이 불면서 업체와 인플루언서 간 협업이 늘고 있다. 법적으로 인플루언서는 개인이므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바이미 열풍에 맹목적으로 휩쓸리기보다 본질적인 거래의 목적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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