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상중국] 사대(事大)와 공중(恐中)의 짬뽕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중국이 두려운가? 아니면 미국에 맞서는 중국이 존경스러운가? 우리는 같은 이웃 나라인데도 일본에 대해서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맞상대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좀처럼 비난하거나 항의하는 등 외교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

유난히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언급을 애써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궁금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 '일국양제 50년'이라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정부의 입장을 알지 못한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 시행하면서 그동안 시위를 주도해 온 민주 인사들을 줄줄이 체포하는 등 홍콩의 남은 미래는 잿빛으로 변했다.

중국과의 갈등을 서슴지 않는 미국은 원색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면서 홍콩보안법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특별한 위상을 가진 홍콩에 대한 특별 대우를 전격 박탈하는 제재에 나섰다. 일본과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등 27개국도 공동성명을 통해 홍콩보안법을 비판했다. 이들 국가 역시 중국이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정부가 홍콩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중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에 관한 문제인데도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된 국가에서 아무런 입장이 없다.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애써 침묵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다.

반면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SNS에 게시하면서 반일 선동에 나선 바 있다.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천양지차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보복 조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나 풀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항의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면서 외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겁박을 가해도 항의하거나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경고하지도 않는다. 이 정부의 대(對)중국 '눈치보기'는 눈물 겨울 정도로 딱하다.

'우한발(發)'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1월 말, 중국으로부터의 감염원 차단이 필요하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의사 단체의 권고에 대해서도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신천지로 불거진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로 대구경북이 쑥대밭이 됐어도 방역 당국은 신천지 탓만 늘어놓을 뿐 코로나 발원지 책임론은 도외시하고 중국을 감싸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 외교 기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취임 7개월여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방중 일정은 국빈 방문이라는 형식과 달리 별다른 환대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식사 때마다 홀로 밥을 먹어야 하는 '혼밥' 사태가 벌어졌다. 2003년 취임 후 첫 방중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진타오 전 주석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중국인들에게 감동까지 안겨줬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은 국민에게 충격을 준 '외교 참사'였다. 중국을 '대국'이라 치켜세우면서 우리나라를 '소국'이라고 낮췄는데 이런 표현은 정상 외교에서 볼 수 없는 저자세 외교라는 지적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며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우리나라도) 중국몽과 함께하겠다"고도 했다. '중화제국의 부활'이 중국의 꿈이라는 것을 천하가 다 아는데, 문 대통령의 중국몽 동참은 '굴종적 사대주의의 최종판'이라는 독설을 자초했다.

문 대통령이 사대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정을 되짚어보니 문 대통령은 사대(事大)라기보다는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는 공중(恐中)에 가깝다. 아니 '사대'와 '공중', 그 두 가지 기조가 복합돼 있는 것 같다. 친중(親中)과 지중(知中)이 사대와 '공중'처럼 종잇장 한 장 차이로 구분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무작정 사대'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교의 기본은 당당함과 대등한 관계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중국이 오히려 축구에서처럼 '공한증'(恐韓症)을 갖게 될 것이다. 상대를 모르면 두렵다. 이 정부의 '중국 공부'가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새삼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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