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비글·13살)가 병원을 찾았다. 배를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걷는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보호자는 "이전에 비해 기력이 못해지며 최근 들어 목이 붓고 설사를 자주 한다"고 말했다.

테리는 혈액검사와 X-ray,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초음파 검사에서 복수와 담낭의 확장,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낭에도 물이 차 있음이 확인됐다. 테리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별개의 질병이 아니라 악성 종양의 전이를 의심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CT검사가 필요했다.
동물병원에는 혈액검사와 X-ray.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되어 있다. 대다수 질병들이 이러한 검사를 통해 확진되고 약물 처방과 수술이 결정된다. 하지만 복합적인 질병을 가지거나 종양환자들은 적합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CT검사가 필요하다.
사람의 경우라면 교통사고, 종양, 뇌혈관 질환이 의심되면 CT와 MRI 검사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건강 검진에도 CT와 MRI가 포함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 혜택으로 검진받는 사람이 부담하는 개인분담금은 저렴하며 검사 과정도 간단하다.
반면에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신중하게 선택된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전신 호흡마취를 하고 검사가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촬영에 협조할 수 있지만 동물은 검사에 필요한 자세를 취하기도 어렵다. 만약 혈관조영제가 각 장기에 도달하는 중요한 촬영 타이밍에 조금이라도 움직여 버리면 검사 결과는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를 위해 전신호흡마취가 이루어지는 이유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비가 사람에 비해 비싼 이유는 전신호흡마취를 위해 마취 전 혈액검사가 이뤄져야 하고, 마취 유지에 더 많은 의료진이 참여해야 하며, 검사 후에도 마취 회복 과정까지 동물환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사람에 비해 평균 3배 이상의 검사 시간이 소요된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를 주치 수의사가 우선적으로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검사 과정에서의 마취에 대한 위험성과 검사비 부담 때문이다.
테리의 경우 수술이 적절한 선택인지, 항암 치료가 선택되어야 하는지, 앞으로의 질병의 예후는 어떠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CT검사가 필요했다. 보호자에게는 CT 검사의 필요성과 함께 동물은 CT 검사를 위해 전신호흡마취가 이뤄져야 하며 그 위험성과 검사비용에 대하여 설명드려야 했다. 테리는 보호자의 동의 하에 전신 CT 검사가 진행됐다.

테리의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심장에도 종양이 증식되어 중요한 혈관으로 침습되어 있었고, 폐에는 20여개의 크고 작은 종양들이 관찰되었다. 담낭의 비대도 종양으로 확인됐으며, 난소 주변에도 종양이 관찰되었다. 경부임파절의 부종도 종양 전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담낭이나 난소에서 유래된 악성 종양이 폐와 심장, 임파절로 전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호자는 상심이 크셨다. 수술을 해서라도 건강해지기를 고대했건만 정작 수술조차 할 수 없는 말기암 상태라는 설명에 어쩔 줄 몰라하셨다. 테리는 노령의 나이에 암이 심장과 폐, 임파절로 확연히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 치료도 도움되기 어려우며, 심장과 혈관에 침습한 종양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발생 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보호자에게 설명해 드려야 했다.
보호자와의 상의 끝에 테리는 가정에서의 호스피스 관리를 결정하셨다. 테리의 남겨진 삶을 가족들이 함께 하며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약물 처방을 요청하셨다.
며칠 뒤 보호자와의 전화 상담을 통해 테리가 야간에 통증 때문인지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으며, 어제는 실신하듯 잠시 쓰러진 적도 있음을 설명하셨다. 그나마 아프지 않을 때는 유동식을 먹으며 가벼운 산책 정도는 즐기는 편이라 추가적인 약물 처방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로 협의했다. 수의사로서 동물환자에게 도움주지 못하는 경우는 참 난감하다. 그저 보호자의 애로점을 들어주고 안타까움을 공감해드리는 수 밖에 없다.
반려동물의 CT 검사는 점차 보편화 될 것 같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종양 발생도 증가하는데 종양을 조기 진단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CT검사이기 때문이다.
종양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반려동물을 위한 의료복지이자, 반려인의 동물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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