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박능후 장관은 왜 대구경북 깎아내리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재난상황실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재난상황실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수 선임기자
이석수 선임기자

경남 김해 대창초등학교를 다니던 노무현 어린이는 어느 날 친구들과 싸우고 무릎을 다쳤다. 억울해하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약을 발라 주며 "무현아, 너는 크게 될 아이란다. 싸우지 말고 항상 큰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다독였다. 뒷날 대통령이 되어 은사의 아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당신 아버지 덕분에 내가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드님을 불렀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예전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 저서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에서 밝힌 부친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그는 이러한 인연으로 참여정부 비서실장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캠프 싱크탱크 멤버로 활동했다.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였던 그는 복지 공약을 총괄했고, 2017년 현 정부 1기 내각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복지 분야 전문가인 그가 코로나19 방역 대응의 주무 장관으로서 보여준 언사(言辭)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 장관이 맞나 싶었다. 초기 국내 확산에 대해 "중국에서 온 한국인이 더 문제"라고 했고, 마스크 등 의료 물품 부족 사태를 놓고 "자신들이 재고를 넉넉하게 쌓아두고 싶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는 등 '망언 시리즈'는 국민들을 허탈에 빠트렸다.

특히 코로나19 피해 중심지인 대구경북에서 시민들과 의료진이 사투를 벌이면서 극복한 노력과 희생을 깎아내렸다. 밖으로는 'K방역'이라 자랑하면서 대구의 땀과 눈물을 외면했다.

지난달 17일 21대 국회 첫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한 박 장관은 "시설이 잘 갖춰진 (대구의) 상급종합병원들은 협조가 늦었다"면서 "암 환자라든지 다른 중증 환자를 다뤄야 하는 그런 역할도 있지만 보다 시급한 감염병 환자를 받는 데는 주저를 했다"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빠진 그들끼리의 상임위에서 대구경북을 골칫덩이로 여겼다. 그는 "의원님도 잘 알다시피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 환자들 대다수는 다른 지역에서 치료를 했다. 수도권에서 다 치료를 했다"면서 "수도권에서 그 환자를 치료한 의사나 간호사들은 왜 자기 수당을 안 주느냐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편을 갈랐다.

장관이 누구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역 코로나 확진자 6천906명(6월 말 기준) 중 대구 이외 지역 병원으로 이송한 환자는 1천101명이었다. 그중 수도권 병원 치료자는 78명에 그쳤다. 경북의 경우도 확진자 1천347명 중 대구경북을 벗어난 병원에서 치료한 환자는 140명이었다.

여기에 한 술 더 얹어 박 장관은 코로나 대응 부실 책임을 물어 교육부장관에게 경북대병원을 감사하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교육부 직원이 경북대병원에 전화를 걸어와 진위를 묻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도맡고 전국 첫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한 병원에 대해 감사할 사안은 물론 아니었다.

장관의 다분히 의도적인 '대구 깎아내리기'에 대해서 지역 병원들은 억울하고 속상해도 반박조차 못 한다. 병상 인가, 각종 공모 사업, 예산 등을 쥐고 있는 정부에 감히 대들 생각을 할 수 없다. 겨우 대한개원의협의회가 박능후 장관에게 상급종합병원의 협조가 지연됐다고 판단한 근거를 입증하는 정보 공개를 요청했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숙지지 않고 재확산 불똥이 어디든 튈 수 있다. 자칫 '코로나 재란(再亂)'이 일어난다면 이전처럼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헌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수장은 덕망을 잃었다. 상처받은 국민과 의료인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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