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철인3종협회의 그릇된 인식과 대응이 부른 ‘최숙현’ 비극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 뒤에는 철인3종협회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협회 운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는 지난 2월 초순 최 선수의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이어 열린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도쿄올림픽 출전 등 특정 선수의 성적에만 매달린 사실이 내부자 폭로와 총회 회의록을 통해 밝혀졌다. 결국 큰 대회 성적만 바라보는 고질적인 엘리트 체육의 병폐와 선수 인권을 도외시하는 협회의 그릇된 판단이 비극을 낳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최 선수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은 감독과 운동보조사, 동료 선수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임을 통감해야 할 주체는 바로 협회 집행부다. 대의원총회에 앞서 진정서 접수 등 최 선수 사안이 이미 불거졌다. 그런데도 올림픽 이후로 조사와 징계를 미루자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우세했다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팀 동료 선수의 도쿄올림픽 출전이 이 문제로 차질을 빚을 것을 의식해 협회가 조사와 관련자 징계 등 조치를 미뤘다"는 의혹이 내부자 입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왔다.

만약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협회가 특정 선수의 성적을 위해 다른 선수에게 가해진 집단 괴롭힘 등 인권 침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않고 묵살했다는 뜻이다. 문제점을 협회가 알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사실상 방조했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부른 것이다.

무엇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협회가 가해 당사자인 감독의 "문제없다"는 말만 믿고 사안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박석원 협회장은 얼마 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이러니 선수 인권보다 특정 선수와 지도자의 사기 진작이나 포상금 문제가 더 중시되는 등 앞뒤가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한체육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협회에 대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성적과 선후배 위계 질서에 매몰된 체육계의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엄한 사후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