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이다. 90년대 말, 벤처사업을 할 때 나의 정신 상태는 '오만과 편견' 그 자체였다. 한동안 그 나쁜 착각은 내 영혼의 성찰 에너지를 점점 퇴화시키는 '악마의 유혹'이였다. 현란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어느 날 있었다. 그날따라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택시 안의 외로운 적막감을 해소하기 위해 택시기사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업하시는 모양이지요? 고생 많이 하십니다." "뭘요!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요." 서로의 무미건조한 대화가 한참 진행되는 순간, 도로에서는 경찰의 음주단속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간단한 검사를 통과하고, 도로를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택시기사는 아까 음주 운전에 걸린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서 한 말씀하셨다. "음주운전 걸린 사람들 벌금 많이 내겠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벌금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어떻게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맥 동원하면, 못 빼는 일이 있겠어요." "그럼 선생님도 뺄 수 있겠네요?" "뭐 조금 노력하면 할 수 있겠지요." 택시기사는 나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고요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순간,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아까 택시비 드렸어요." "그것이 아니고, 아까 선생님 말씀 중에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저 같이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은 인맥이 없어서, 인맥을 동원할 방법이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취중에 '참 무식하고 부끄러운 말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세상을 살면서 그날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독주의 취기가 한방에 사라져 버졌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권리가 인맥을 통한 불공정의 결과일 수도 있고, 나에게 찾아오는 당연한 일상의 풍요함도, 그들에게는 수많은 좌절과 고통속에서 만들어진 '피눈물의 노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달지 못했다.
택시기사 아버지의 삶을 노래한 자이언티 '양화대교'의 노래를 들으면서, 인맥 자랑의 허상에 취해 인간 내면의 콘텐츠를 제대로 보지 못한 내 청년시절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다시 복기해본다. 나, 너, 우리를 생각할 때다. 느리게 걸어간다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실과 결핍이 있어야 인생의 의미를 그나마 증명할 수 있는 나약한 관계의 존재다.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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