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의 만길 씨 기억 속으로 들어 가 보고 싶다. 어디쯤에서 멈춰진 건지 그의 주치의도 모르고 그의 아내도 모른다. 일상의 대부분은 대여섯 살쯤 된 아이로 살고있는 만길 씨는 하얀 벽 속에 갇힌 삐에로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당혹스럽게 한다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54세의 만길 씨가 되어 사내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여러 인격체를 보여주는 그의 기억이 궁금하다. 그런 그가 그제 점심때쯤 옥상 나무의자에 앉아 눈물 한 방울 무겁게 떨군다.
육 십 년을 살고도 철 이란 게 덜 들었는지 남은 세월이 지겹다며 우울이란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였다. 진솔한 삶의 가치조차 왜곡하며 인격장애를 앓던 때, 친구의 권유로 호스피스라는 명찰을 달았다. 나의 못남과 지극한 이기가 수치가 되었던 곳, 늦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그곳에서 만길 씨를 만났다. 너무 젊고 옆집 아재 같은 후덕한 남자였다. 췌장암 말기와 초로기 치매를 함께 앓고 있는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남자, 만길 씨 그의 한 뼘쯤 남은 마지막 시간을 울면서 웃으면서 같이 보냈다.
'젠장 가을도 더럽게 가기 싫은게벼 웬 놈의 낙엽은 아직도 낭구에 달렸다냐.' 옥상 위에서 내려다본 아스팔트 위엔 어젯밤 내린 늦가을 비에 은행잎들은 널부러저 누웠다. 홑이불 같은 한 겹 환자복의 깃을 여미며 무심히 내뱉는 만길 씨의 눈에 가을빛이 투영된 눈물 안 방울 반짝인다. 이 순간 그는 54세의 만길 씨일까? 불현듯 찾아온 그가 반가워 살며시 들여다본 그의 기억의 출구는 어느새 닫히고 어린아이가 되어 보챈다.
병동이 발칵 뒤집혀 졌다. 발가벗은 만길 씨가 뛰어다닌다. 거품을 물고 씩씩거리며 간호사실이며 병실이며 종횡무진이다. 간 병 사 선생님이 목욕을 시키다가 느닷없이 비누 거품을 달고 뛰어나가는 만길 씨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죽여 버린다고 고함을 지르며 날뛰는 그를 제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 간호사 두 분이 겨우 안정제를 주사하여 잠재웠지만 잠이든 그의 얼굴엔 풀어내지 못한 울분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이 광란은 그의 어디쯤의 분노일까? 무엇이 그리 억울하고 분했을까? 누구를 죽일 만큼 고통이었을까. 그의 머릿속 지우개는 왜 이것마저 지우지 않았을까. 이제 곧 가야 할 사람, 울분의 기억마저 지워주면 좋겠다.
'코드블루' 다급한 멘트가 하얀 벽들 사이를 분주하게 번진지 두 시간 도 안되어 승강기에 홑이불 씌운 별 하나 지하로 내려갔다. 떨어질 별도 없는데 또 하나의 별이 지던 날 배설하지 못한 묵직한 분노가 스멀거린 하루였다. 슬금슬금 뒷걸음만 치다 집으로 돌아온 날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나의 행동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승강기에서 내린 9층, 맨발이었다. 어디에 신발을 벗어놓았을까, 캄캄하다. 기억의 출구는 닫히고 행간에서 이탈한 사연처럼 승강기 앞에서 미아가 되었다. 얼마나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 있었을까. 기억 따라 1층 승강기 앞에서 신발을 찾아올 때까지 나는 머리에 수십 마리 쥐가 들락거렸던 것 같았다. 승강기 앞을 내 집 현관으로 착각했던 머릿속은 지우개가 자라기 시작하는 건지, 피해갈 수 없는 수 순인가.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한참을 울었다.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고 싶을 때 가 있다. 존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던 오욕의 세월이 있었다. 경솔함과 만용의 젊음이 수치가 되는 한 페이지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도리질을 수없이 해도 유리창에 남아있는 묵은 때 같아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단편의 시간이다. 희석되지 않고 사금파리처럼 생채기를 내던 시간 들, 그러한 단면들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닐까. 울분으로 회한으로 표출되는 치매라는 지우개는 끝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의 욕구 때문이 아닐까. 그 마지막 페이지를 힘겹게 끌고 가는 만길 씨, 캡슐 속에 묻혀진 그의 기억 속에 행복한 순간들만 표출되기를 빌어본다.
막막함과 수렁 같은 병 앞에서 줄기차게 남편을 향한 악다구니로 버티는 젊은 아내, 가난을 무겁게 이고 생계마저 위급한 상황에서 차라리 오늘 밤의 절명을 바라는 그녀를 보며 나의 젊은 날을 본다. 피가 한 사발쯤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담지 못할 악다구니를 쏟아내던 젊었던 시절의 나와 만길 씨의 아내가 무엇이 다를까. 그녀의 암울한 절망이 연민이 된다. 젊은 허리를 동여맨들 다가올 긴 겨울을 어떻게 견딜까. 몰핀 주사 한 대에 췌장암 말기의 고통을 잊고 잠들어있는 그의 얼굴은 울분도 없다. 어쩌면 그의 지우개는 아픈 그의 삶에 대한 신의 마지막 배려일까?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인 어린애의 기억으로 떠날 수 있도록 선물이었다면 역설일까.
포근포근하게 함박눈이 내리는 날 병실을 들어섰다. 비어있는 침대에 하얀 홑이불만 허물처럼 누워있다. 다녀가는 텀 사이에 마지막 수인사도 없이 그는 갔다. 간호사가 건넨 쇼핑백 속에 그의 와이프가 쓴 손편지가 들어있고 팬티스타킹 세 켤레가 얌전히 들어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 사람 잘 갔어요" 편지지에 몇 점의 얼룩은 그녀의 눈물이었을까. 창밖엔 십이월의 눈이 꽃이 되어 쏟아지고 내 마음에도 눈물이 꽃이 되어 핀다.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각인된 만길 씨처럼 나의 마지막도 복사꽃 피던 유년의 웃음으로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좋은 기억만을 남겨주는 지우개를 바라며 만길 씨의 짧은 생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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