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정권이 열 번 더 넘어져야 하는데도…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이 지경이면 정권이 열 번 더 넘어져도 모자랄 판 아닌가. 박원순·오거돈·안희정. 대한민국 제1·2의 도시인 서울·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돼 극단적 선택을 하고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 사람은 성폭행으로 징역을 살고 있다. 송철호·김경수.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울산시장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하명 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다섯 명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 대통령을 비롯한 지금 집권 세력이 가만 있었겠나. "이게 나라냐"며 연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였을 것이다.

문 정권이 넘어질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대책에 실패해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고, 세금 폭탄을 안기고, 청년들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부숴 버렸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은 다주택을 보유하면서 집값 상승 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툭하면 문 대통령은 민생(民生)을 들먹이지만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지표들과 현장 비명(悲鳴)으로 확인되는 '경제 폭망'은 정권을 거덜 내고도 남는다.

국민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 준 조국·윤미향 사태, 북핵 해결은 간데없이 국민 자존심만 뭉개 버린 대북 정책 실패, 국가 안위와 직결된 한·미 동맹 붕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온 정권 관련 의혹과 비리, 이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겁박하는 작태(作態) 등 정권이 넘어질 일들이 숱하게 많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늘어놨던 말들과 정반대 일들이 벌어지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정권이 넘어질 일들이 차고 넘치지만 문 정권은 박근혜 정권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까지 갔던 노무현, 탄핵을 당해 대통령에서 물러난 박근혜를 통해 이 정권 사람들은 정권이 넘어지지 않을 수법을 체득(體得)했다. 여기에 야당 복(福)까지 타고났다.

첫째는 잘못 인정하지 않기다. 박원순 사건을 비롯해 정권이 흔들릴 일들이 터져도 문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벌면서 집권 세력이 총출동해 물타기, 본질 흐리기, 덮어씌우기, 버티기로 사태를 무마하는 데 탁월하다. 덜컥 사과를 한 박근혜는 너무도 순진했다.

둘째는 대통령 탄핵 루트(route·경로)를 장악하는 것이다. 여론을 형성하는 방송·신문을 틀어쥔 지는 오래됐다. 총선 압승으로 국회를 수중에 넣어 탄핵 경로를 완전 차단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광장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민노총·전교조는 애초 같은 편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셋째는 정권 대체 세력의 부재(不在)다. 문 정권이 넘어지면 대체할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세력이 없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수권 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에게 정권은 애증의 대상이지만 야당은 아예 괄호 밖이다.

결정적인 한계는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갈수록 정권의 선전선동에 휘둘리고, 국가에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정권이 넘어질 실정(失政)들이 쏟아지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 게 이를 방증한다.

혹자(或者)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 2022년 대통령·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교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깨어나지 않는 한 선거에서 이기는 데 능수능란(能手能爛)하고 나라 곳간까지 꿰찬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닥쳐올 우려가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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