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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시와 함께] 기도 -아들 승엽에게/이종암(1965~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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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년 전 오어사 원효암 오른 적 있다

아내 뱃속에 새로 생명을 얻은 그때

늦은 가을 암자 툇마루에 앉아

바람에 떨어져 어디론가 펄펄 날아가는

감나무 이파리 하나에도 마음 다 모았다

내가 놓쳐버린 생명, 그 큰 죄

빌고 또 빌면서

다시 오고 있는 뱃속의 생명 온전히 달라고

아내는 오늘도 암자에 오른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절 한다

어렵게 건너온 자식 하나

활짝 피어 제 웃음 다 웃게 하라고

이종암 시인은 기습적인 사람이다. 술이 얼큰해지고 노래방엘 가서 고성방가할 즈음이면 불쑥, 기습적으로 남자가 남자의 입술을 덮쳐오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요즘엔 통 술도 안 마시고 노래방도 안 가고 기습공격을 저지르지도 않는단다.

세상의 모든 아비도 자식과 함께 철이 드는 걸까. 몇 달 전, 정말로 모처럼 전화를 해서는 하나뿐인 아들 승엽이 소식을 줄줄이 알려왔다. 십 년도 훨씬 넘어, 술 취한 시인이 자식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와는 정반대의 소식을. 그렇다. 이 시를 읽으니 시인의 아들이 왜 빗나간 길을 가지 않고 바른길을 가게 됐는지 그 해답을 알겠다.

부모님 세대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가진 것도 많아졌지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건 '사랑'이고 '기도'다. '희생'이고 '헌신'이다. '감나무 이파리 하나에도 마음을 다 모았다'는 말은 너무 과장되게 느껴지지만, 아니다. 이종암 시인은, 기습적이지만 나무에게도 바위에게도 넙죽접죽 절을 잘 하는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다. 이종암은 예스러운 사람이다. 단성식의 수필집 '酉陽雜俎(유양잡조)'의 감나무의 七絶五德에 보면 오래된 감나무의 속이 검은 건 자식 키울 때 부모의 속이 썩은 것과 같다고 하는데 시인은 기꺼이 그 감나무 같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유홍준 시인
유홍준 시인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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