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의 새콤달콤 과학 레시피] 감염병 정복을 향한 발걸음

神으로 여겨진 역병, 현미경으로 보고 항생제로 죽이다

요즘 인공지능이니 반도체니 온갖 첨단기술들이 발달해 있지만 신종 감염병 대응은 여전히 쉽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머지않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전세계 코로나19 백신은 1억6천만 건 이상 접종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50만 건이 넘었다.

감염병은 지난 수 천년 이상 인류와 함께 해왔다. 그렇지만 인류가 감염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제대로 알게된 것은 이백년도 되지 않는다. 이제 감염병의 정체를 밝힌 중요한 발견의 순간을 들여다보자.

힌두교의 여신 시탈라는 천연두 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숭배되었다.
힌두교의 여신 시탈라는 천연두 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숭배되었다.

◆역병, 민간신앙으로 숭배되다!

옛날 사람들은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는 역병을 단순한 질병의 한 종류가 아닌 신적인 존재로 여기며 숭배했다. 중국에서는 두진낭랑(痘疹娘娘)이라는 천연두 여신을 숭배했다. 그리고 인도에서도 힌두교의 여신 시탈라가 천연두를 예방하고 치료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원을 만들어 숭배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천연두를 마마신이라는 무서운 귀신으로 믿었으며 굽신거리며 마마신이 빨리 나가기를 빌었다.

중세시대 유럽도 감염병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의사와 과학자가 있었고 이들을 양성하는 대학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인 1345년 프랑스 파리대학교 의학부는 화성‧목성‧토성이 일렬로 배열되어서 지구 대기에 치명적인 오염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흑사병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하늘의 행성의 움직임으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어 흑사병이 생겼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과학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로 감염병에 관해 무지했다.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

◆현미경 발명, 그리고 밝혀진 병균의 정체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크게 유행한 지 몇 백년이 지나서 드디어 감염병이 병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그 시작은 현미경의 발명이었다.

1676년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만든 렌즈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현미경을 만들었다. 그는 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물속을 들여다봤더니 아주 작은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흑사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이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19세기에 들어와서다. 1877년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는 탄저, 콜레라, 결핵 등이 병원균의 감염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러니까 코흐의 연구 이전에는 세균 감염에 의해 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무렵에 감염병이 오직 미생물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코흐의 공리'가 발표되었고 코흐는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1894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예르생과 일본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동시에 페스트균을 발견했다. 드디어 흑사병의 원인 세균이 밝혀졌고 그 세균의 이름을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고 지었다. 이후 페스트균이 벼룩에 기생하며 이 벼룩이 설치류와 여러 동물의 몸에 살고 있다가 사람에게 전염되어 흑사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흑사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 시골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영국 시골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백신의 등장, 감염병을 막아주다!

훌륭한 의사는 병을 잘 고치지만 최고의 명의는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해준다는 말이 있다. 바로 백신이 명의처럼 병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주는 역할을 한다.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서 15~16세기에 '인두법(Variolation)'이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천연두에 걸린 사람 몸의 고름이나 옷을 가져와 천연두 바이러스를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즉 인두법은 천연두 예방법이기는 하지만 백신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백신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종두법(Vaccination)'이다. 종두법은 소가 감염되어 우두를 일으키는 우두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물질을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에 면역을 갖도록 한다. 이처럼 제너가 최초의 백신을 개발했지만 그는 과학적인 원리를 알지 못했다.

백신의 과학적 원리가 밝혀진 것은 1880년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서다. 당시 파스퇴르는 콜레라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배양된 박테리아를 닭에 접종하는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백신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1885년 파스퇴르는 사람에게 접종할 수 있는 광견병 백신을 처음 개발했다.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감염병에 대한 현대적인 백신들이 개발되어 전세계적인 접종이 진행되었다.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한 때로부터 184년 후인 1980년 5월 세계보건총회는 천연두 종식을 선언했다. 이로서 수천년 동안 인류를 공포에 떨게했던 천연두라는 감염병이 종식되었다. 이처럼 백신의 효과는 강력하다.

페니실린
페니실린

◆항생제 발명, 병균을 죽이다!

백신이 감염 예방을 막는 약이라면 항생제는 감염된 환자를 치료하는 약이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였다는 흑사병이 발생했 때 치료제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 흑사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가 있어서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흑사병은 여전히 치사율이 높고 무서운 감염병이지만 24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사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세계 최초의 항생제라 하면 '페니실린(Penicillin)'이 생각난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세균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 배양물을 800배 희석해도 포도상구균이 제대로 증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물질을 이용해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만들었다. 이후 다양한 항생제가 개발되어 많은 환자의 목숨을 살리고 있다.

그런데 1996년 일본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가 처음 발견되었다. 이 슈퍼박테리아는 당시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로서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박테리아가 등장한 것이었다. 2019년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슈퍼박테리아 감염증에 걸린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제 이 슈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더 강력한 항생제를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감염병과의 힘겨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영호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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