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창작은 고통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걸까?'
1891년 폴 고갱은 유토피아를 찾아 타이티 섬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겪고 1893년 귀국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작품은 안 팔리고 부인과 애인한테 외면을 당하는 등 가시밭길을 견디지 못한 고갱은 1895년 재기를 위해 또 타이티로 향했다.
그러나 아! 풍파는 끝이 안보였다. 큰 딸의 사망 소식으로 깊은 절망에 사로잡힌 고갱은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 작품 제작에 붓을 들었다. 바로 회심의 역작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작품은 원색과 평면적 인체 표현, 원시성이 주는 강렬함으로 인해 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던진다. 오른쪽 여인 3명과 어린이는 삶의 탄생, 중간은 삶의 장년, 왼쪽에 앉아 있는 늙은 여인은 삶의 노년을 상징하며 왼쪽 배경에 그려진 푸른 동상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을 의미한다.
이인석 작 '파문Ⅱ-그들은 내게 왜 사느냐고 물었다'는 10개의 원이 홀로 또는 겹쳐져 있고 각각 흑회색, 노랑, 연두, 붉은 색으로 채색돼 있다. 금속표면 같은 바탕의 질감은 작가의 작업방식에 따른 회화적 효과다. 건축 재료인 퍼티(벌어진 틈새를 메꾸거나 패인 곳을 채우는 일종의 접착제)와 물감을 섞어 패널에 바르고 굳히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채기처럼 드러나는 '갈라진 틈'을 만들고 이 표면을 갈아내고 씻으면 화면에서 보듯 배경화면이 나타난다.
작가에 따르면 '갈라진 틈'은 삶의 흔적임과 동시에 또 녹록지만은 않을 남은 날의 모습이다. 이인석은 작업할 때 굳이 논리나 개념의 구성에 맞추지는 않는다. 즉흥적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진 틈'은 어떤 '경계'라기보다 오히려 원 모양의 조형요소들을 연동시켜줌으로써 다른 평면과 공간으로 이동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작가의 작품에 반원 모양의 조형요소들은 그 꼴로 인해 이미 프레임 밖의 다른 면이나 공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작품 이해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이인석은 주제어에 설명을 더하는 식의 명제를 작품에 붙이기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제아무리 뛰어난 예술적 걸작품도 작가의 기억과 경험에서 소환된 삶의 흔적이 작업에 차용되는 질료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고갱의 절망적 삶의 여정이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역작을 남겼듯, 이인석도 살면서 불쑥불쑥 가슴을 울리는 감정을 작업에 빌려왔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인석은 자신의 작업을 "好·作·質 한다"는 표현을 한다. 好(호)는 좋아하는 것, 作(작)은 짓거나 만드는 것, 質(질)은 물질이나 형상의 바탕이 되는 것, 즉 좋아하는 것을 회화로 만들어 물질이나 형상의 바탕이 되도록 하는 일이 그의 작업이다. 자연히 이런 '호·작·질'로 완성된 작업은 슬픔과 기쁨, 고통과 안식,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등 기억에서 소환된 상흔이자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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