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자 작 '시간의 축적'(Time accumulation) 80x100cm, Acrylic on panel(2019년)
사랑, 평화, 희망, 영혼, 개성, 정열, 신(神), 절망, 무의식… 그리고 시간 등과 같은 실재적 존재성을 갖지 못한 추상명사를 주제로 그것을 예술적 형태로 표현하다면,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열이면 열 사람 모두 표현방식이 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시간'을 구체적 형태로 콕 집어 표현할라치면 머릿속은 더더욱 복잡해진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촛농처럼 일그러진 시계를 그린다쳐도 그건 너무 상투적인 것 같다. 절망을 극대화한 듯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작품 속 주인공이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해질 무렵 뭉크가 체험한 자연이 만들어 낸 핏빛 노을의 환영이며 그림 속 주인공은 다만 자연의 절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선 먼저 '시간'의 뜻을 알아야 했다. 알렉산더 데만트가 쓴 '시간의 역사'에 보면 "시간은 질서정연한 움직임"이라고 정의한 뒤 "시간의 움직임에 의해 표현되거나 시간에 의해 움직임이 생겨나고 거기서 다른 것들이 파생되는 방식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했다. 말인즉 '시간'과 '움직임'은 논리적으로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기자 작 '시간의 축적'은 화면 상단의 검은 물감과 하단의 하얀 물감이 서로 만나 섞이는 과정처럼 표현됐다. 흑백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역동성(움직임)이 인상적이며 제작은 캔버스가 아닌 판넬 위에 이루어졌다.
그림을 그리던 중 캔버스 아래 화실 바닥에 떨어진 물감들이 차곡차곡 쌓여지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굳게 된 것을 보고 그냥 버리기 아까워 그 굳은 형태를 일정 간격으로 절단한 단면을 다시 캔버스에 나열해 보았더니 전혀 다른 느낌의 조형미로 다가왔다. 이때부터 권기자는 일부러 응고된 물감들을 모아 작가적 감각과 에너지를 보태 작품으로 재구축하게 됐고, 이것이 '시간의 축적' 연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시간의 축적' 연작은 굳어진 물감들의 다양한 색들의 조합을 통해 황홀하고 아름답기도 하며, 불같이 뜨겁게 느껴지거나, 수줍게 또는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 같기도 하다. 다만 이 작품은 흑백의 두 가지 단색만을 사용함으로써 차갑고 냉정한 작품으로 보일 따름이다.
굳은 물감의 조각들을 캔버스나 판넬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 퍼즐 맞추듯 재구성하고 조합하면서, 작가는 물감의 층과 결에서 드러난 임의적인 간극과 질감을 통해 '시간'을 수평 혹은 수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권기자 작 '시간의 축적'에서 물감의 층과 결은 '움직임'의 표현이고 그 움직임이 모여 화면을 이루게 되면 그게 바로 '시간의 축적'이라는 조형성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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