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매일신문사가 주최하고 대구지방보훈청이 후원, DGB대구은행이 협찬하는 '2021 매일보훈대상 시상식'이 16일(수) 오후 3시 대백프라자 프라임홀에서 열린다.
매일보훈대상은 5월 14일 접수마감 후, 20일 심사위원회를 거쳐 대구 7명, 경북 7명, 총 14명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성길-상이군경(74·달서구 와룡로)
1968년 해병대에 입대해 1970년 4월 베트남에 파병됐다. 그 해 10월 호이안 지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돼 치료 후 의병 제대했다. 제대 후 신체적 역경을 극복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77년부터 2006년까지 학교 서무과 기능직으로 재직하며 국가보훈처장 표창, 교육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특히 2016년에는 달서구 보훈회관 수리 등 노후된 건물 환경 개선의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으며, 현재까지 지역사회 봉사활동 및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판식-유족(71·서구 국채보상로)
6·25전쟁으로 부친이 전사하고 미망인이 된 어머니와 어렵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직 회사에 취직해 어머니를 봉양하며 생활했다. 정년퇴직 후 대구 서부소방서 의용봉사대에 가입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구 서구지회에서 활동하며 회원 위로 및 격려, 호국영령 추모제, 사진 전시회, 현충시설 정화 작업 등 봉사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홍기오-미망인(74·달서구 월배로)
21세에 결혼 후 3개월이 됐을 때 남편이 입대해 베트남에서 우측 다리 관통상을 입고 장애를 얻어 하사로 전역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돌보며 연로한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행상과 삯바느질, 가사도우미, 공장일 등을 하며 시동생 셋과 3남매를 대학까지 마치게 했다. 남편의 상처가 덧나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할 때 3년 동안 같이 생활하며 간병하다 남편이 떠난 후에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으며, 특히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달서구지회 가입 이후 같은 처지의 회원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일순-장한아내(63·남구 중앙대로)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공상군경 2급인 남편과 결혼했다. 한때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남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었고, 그 결과 남편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교도 졸업해 대학원 석사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내조를 했다.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면서 자식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으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있다.

◆장옥훈-무공수훈(82·달성군 가창면)
1969년 공병중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워 인헌무공훈장을 수훈하고 이후에도 27년간 군에서 복무해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전역 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보국훈장을 수상했다. 전역 후 12년 6개월간 대구 장애인 종합복지관장으로 재직하며 장애인 복지 증진에 공헌함은 물론 11년 5개월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대구지부에서 활동하며 회원 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고 지역 내 현충시설을 정비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추진했다. 현재는 대구지부 원로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무공수훈자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광희-특별(65·북구 연암공원로)
1975년 정보사에 입대해 1978년 만기전역하고, 군 복무 중 얻은 척추 부상에도 불구하고 신체적·경제적 자립에 성공했다. 이후 2002년 상이 7급 국가유공자로 판정됐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장을 역임하면서 특수임무유공자 및 국가유공자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보훈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어려운 회원을 위해 생필품을 지원했으며, 농촌 일손 돕기, 현충시설 정화활동, 독도지킴이 행사, 재난재해 봉사활동, 코로나19 방역 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최영린-특별(91·중구 교동4길)
1951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금화지구 전투, 속초지구 전투 등에 참가했으며 1964년 1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위로 전역했다. 2019년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대구 중구지회장으로 임명돼 각종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6·25전쟁 참전유공자 수당 인상에 기여했다. 회원 간 친목 도모와 복지 증진을 위한 생필품 지원 등을 통해 상부상조했다. 또한 지역 초·중·고등학교에 6·25 바로 알리기 교육을 실시해 후세에 6·25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만호-상이군경(76·경주시 황성로)
1965년 육군에 입대해 1년 후 월남전에 파병됐다. 전투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67년 적과의 교전으로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 후 의병 제대했다. 그 후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상이군경회 경주시지회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생필품 지원 등을 통해 동료 상이군경을 비롯한 보훈 가족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으며,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단체 발전과 보훈 가족 및 소외 계층 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수상하는 등 보훈 가족의 복지 증진 및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황범영-유족(68·문경시 매봉1길)
6·25전쟁 시 예천 경찰서 의무경찰로 복무 중 인민군과의 교전으로 전사하신 아버지로 인해 전몰군경 유족이 됐고, 그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져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정을 이끌어야 했다. 경제적 역경을 딛고 자립에 힘쓴 결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정기적인 기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문경시지회장을 역임하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유족회의 발전과 회원 간의 단합을 통해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서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노력했다.

◆신복희-미망인(82·봉화군 죽터길)
6·25전쟁 중 강원도 양구 피의 능선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어 장애를 얻게 된 남편을 대신해 산을 개간하고 바느질 품앗이 등을 하며 자식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매월 1일마다 충혼탑 참배 및 주변 환경 정화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매월 지회 회의 때마다 자비로 음식을 준비해 회원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회원 친목 도모에 힘썼다. 특히 지자체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2014년 조례가 만들어져 보훈예우 수당이 인상되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경북지부장 표창 및 봉화군수 표창을 수상했다.

◆장귀순-장한아내(71·봉화군 의양로)
월남전 참전 후 전신 파편상을 입고 제대한 전상군경 3급인 남편과 결혼했다. 신체장애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던 남편을 다독여 강원도 석포제련소에 취직하도록 했다. 하지만 남편의 월급이 적어 생계를 위해 병원 청소부, 난전 장사 등을 하며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면서 자녀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2006년 남편의 고향인 봉화군으로 귀향한 후 연로하신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정동안-무공수훈(78·구미시 산책길)
1965년 해병 하사로 임관 후 월남전에 파병돼 분대장 임무를 수행했으며, 귀국 후 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1968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다시 월남전에 파병돼 해병 청룡부대 소대장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가해 인헌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귀국 후 금오공고 훈육관으로 근무하며 학도호국단 지도, 태권도 유단자 배출 등에 힘썼으며 퇴직 후 구미시 재향군인회 회장,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경북지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회원 장례의전행사 지원, 어려운 회원을 위한 봉사활동, 경북도내 시군지회장 협의회 활동 등을 통해 회원들의 명예를 높이고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영근-특별(88·상주시 율곡1길)
1951년 지방공무고시에 합격해 근무하던 중 6·25전쟁 중인 1952년 육군에 입대해 4년 6개월을 복무하고 1957년 육군 하사 계급으로 만기 전역했다. 그 후 복직해 35년간 공직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상주시지회장 역할을 수행하며 6·25전쟁 기념행사 추진, 6·25 노래비 등 제작물 설치 및 지회 운영을 위한 사비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6·25 참전유공자의 위상 증대와 지역 사회 발전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내무부 장관, 경상북도지사, 상주시장 등으로부터 많은 표창을 수여받았다.

◆박덕용-특별(86·칠곡군 중앙로)
1950년 9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2년간 공비 토벌 작전에 참여하던 중 학도병 귀향 명령으로 학업에 복귀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59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으며, 1962년부터 칠곡군청에서 퇴직 시까지 근무하였다. 이후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에서 활동하며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지회장으로 활동하며 참전용사 명예선양비 및 보훈회관 건립, 참전유공자 명예수당 인상 등 회원 복지증진에 기여했으며, 다양한 6·25 행사에 회원 참여를 독려해 나라사랑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북도지사 표창, 칠곡군수 표창 등 여러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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