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에서 대규모 미달이 발생했다. 대학 입학정원이 43만 명인데 신입생충원율은 91%에 그쳤다. 3년 후에는 수험생이 37만 명으로 감소해서 미달이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대구경북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신입생충원율을 보면 안동대 73%, 대구대 81%, 대구가톨릭대가 84%이다. 경북대도 입학정원의 69명을 채우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입생충원율을 걱정하고 언론은 미달의 원인을 학령인구 감소에서 찾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학령인구 감소는 근인(根因)이 아니다. 근본 원인은 수요 감소가 아니라 공급 과잉이다. 학령인구가 줄기 전부터 대학이 너무 많았다.
대학의 양적인 성장은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의 준칙주의(準則主義)와 정원자율화가 결정적이었다. 준칙주의는 대학 신설을 유발했고 정원자율화가 기존 대학의 확대를 초래했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공약도 한몫을 했다. 1985~2010년 우리나라 인구가 20% 증가했지만 대학생은 117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139% 증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간한 필자(筆者)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기준 대학생 수는 87만 명 과잉이었다. 그동안 인구와 대학생 수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이 결과는 현재도 유효하다. 대학생 87만 명을 줄이려면 입학정원을 20만 명 이상 감축해야 한다. 20만 명은 대학 입학정원의 절반이다.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선택으로 부실 대학을 정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학생들이 수많은 대학의 교육시설, 장학금, 취업률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충분한 정보가 없으면 옥석(玉石)을 구분하지 못한다. 겉만 그럴듯한 대학이 생존하면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 부실 대학을 규제해도 피해가 보상되지 않는다. 부실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사전적인 정보 제공이 사후적인 규제에 비해 효율적이다.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입학정원 감축을 유도할 필요성도 있다. 다만 대학의 거버넌스(governance)에 따라 정책이 달라야 한다. 사립대학은 주인이 있지만 국공립대학은 주인이 없다. 사립대학은 자발적인 감축이 가능하지만 국공립대학은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의 일부를 담당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963년 제정된 사립학교법이 그 증거다.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을 담당하되 최소한의 공익성을 요구한 것이 이 법이다. 이제는 그 역할을 다한 사립대학이 많다. 대학운영을 그만둘 의사가 있는 설립자도 다수(多數)다. 이들에게 퇴로(退路)를 열어줘야 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대학을 해산할 경우 국가가 남은 재산을 가져간다. 설립자는 손 털고 나가라는 것이다. 이는 부당하다. 설립자가 모든 성장의 열매를 가져갈 권리는 없지만 기여한 바가 큰 것은 사실이다. 사립대학 해산 시 설립자의 몫이 보장돼야 한다. 해산한 사립대학 재산의 일부를 설립자에게 돌려준다면 구조 조정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입학정원 감축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공립대학의 빅딜(big deal)이 가능하다. 학생 수를 대폭 줄이되 교직원 수와 예산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교육의 질도 높아진다. 학생 수를 줄이면 수업료 수입이 감소해서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기우(杞憂)일 뿐이다. 추가적인 재원은 필요하지 않다. 현재 학생 한 명이 내는 수업료는 교육에 드는 비용보다 크지 않다. 지난 13년 동안 수업료가 동결됐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 대학의 수입은 줄지만 비용이 더 크게 감소한다. 많은 학생들이 국가장학금을 받고 있으니 학생 수를 줄이면 정부의 재정 부담도 완화된다.
몇몇 대학이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입학정원 감축이 없는 대학 간 통합은 눈속임이다. 두 개의 부실 대학이 통합하면 부실 대학이 하나로 줄지만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우량 대학이 부실 대학과 통합하면 하향 평준화된다. 대학의 구조 조정은 이미 늦었다. 더 늦어지면 사회적인 혼란과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대학 입학정원의 감축은 빠를수록, 규모가 클수록 좋다.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푸른 뱀의 계절, 의(義)와 불의(不義)가 충돌하다
탄핵 반대 집회 의식한 광주 시민단체 "내란 준동 제압 위해 모여달라" 호소
김종인 "한동훈, 가장 확장성 있는 후보…국힘, 극우 집회 참여 옳지 않아"
배현진 "문형배, 불법 음란물 2천건 유통 현장 방관…사실 밝혀라"
현직 검사장, 문형배 직격…"일제 치하 재판관보다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