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당 아이(정순희 글 / 학이사 / 2020년)

아이들과 함께 지역연계 독서문화 체험학습을 하는 날이다. 대구 문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흔적을 찾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이다.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이상화 고택, 약령시를 거쳐 대구문학관까지 걸었다. 대구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대구 문학의 변천사는 물론 문학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약령시에서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는 한 아이의 동상이 눈에 확 들어왔다. 누구일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이곳을 배경으로 태어난 '백초당 아이'를 꼭 만나고 싶었다. 언젠가 작은 버스에 그림책과 동화를 가득 싣고 작은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에서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는 정순희 작가의 장편동화다.
약령시에서 만난 백초당 아이 '휘'는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는 소년가장이다. 아픈 동생의 약값 대신으로 한약방 '백초당'에서 일을 시작한다. 잔심부름과 청소를 하면서도 세상에 감초(甘草) 같은 사람이 되리라 꿈꾼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한의학 공부를 하면서 산에 올라 약초 공부까지 마친다. 고난 속에서도 한약방을 지키겠다는 주인공 '휘'를 보면 약방감초(藥房甘草)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약방감초란 '어떤 일의 진행에 꼭 필요한 사물이나 사람'을 말한다.
"'아무리 약효가 뛰어난 약제라도 그것만으로는 쓸 수 없는 법이야. 감초와 같이 써야 되는 거 알지? 그래서 난 감초가 좋아.'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감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60쪽)
"'휘야, 모진 날 백초당을 지켜 줘서 고맙다.' 유 의원은 숨을 크게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저기 책뿐이구나. 이곳이 다시 조선의 백초당이 되도록 네가 맡아 맥을 이어주게나. 부탁이네!'"(150쪽)
대구 약령시는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구하려 자금을 모으고 전달하던 장소였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와 한약방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어간다.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좋은 책은 권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찾아 읽는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청소년 북토큰 도서'와 '2021 대구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모든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감초 같은 사람 '휘'를 꿈꾸면 좋겠다. 필자도 책을 읽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감초 같은 사서(司書)인가? 어떻게 살아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고민한다.
책에 대한 사랑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독서로 마음 속 근육 키우기에 좀 더 힘을 써야겠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한 권의 책과 한 줄의 글로 위로하고 싶다. 더불어 책과 자연에서 스승을 찾아 꾸준하게 공부해야겠다. 지금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실천하는 삶도 이 세상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일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서(司書), 쓸모 있는 사서(司書), 약방의 감초 같은 교사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금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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