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LG생활건강을 상대로 갑질 혐의를 받는 쿠팡에 대해 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생활용품 시장점유율 1~2위를 차지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갱신하며 고공행진 중인 대기업이 아직 적자 상태인 국내 온라인 커머스 3위 기업(2019년 기준) 상대로 거둔 '반쪽짜리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조기업이 신흥 유통기업을 상대로 길들이기 한다는 비판이다.
공정위는 19일 쿠팡이 대규모유통업법과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경쟁 온라인몰에 판매가격 인상을 요구 ▲마진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LG생활건강 등 납품업자에게 광고 요구 ▲판촉행사 비용의 납품업자 전가 및 판매장려금 수취 등 다수의 법 위반행위를 적발해 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9년 6월 LG생건이 신고한 혐의인 부당반품 금지, 배타적 거래강요 금지, 거래거절 등은 무혐의 처리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대기업이 경쟁 대기업을 상대로, 또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갑질 이슈를 제기한 적은 많았지만 대기업이 유통 후발기업 상대로 과징금 부과를 이끌어낸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공정위는 "온라인 유통업자도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자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제조업체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상품공급에서 실질적인 주도권이 있는 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이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쿠팡이 부당하게 가격 인상 요구" VS "처음부터 과도한 납품가 감당 못해"
이번에 공정위가 인정한 위법사항의 공통점은 "쿠팡이 손실에 따라 납품업자들에게 과도하게 손해 보전을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쿠팡이 최저가 매칭 정책에 따라 2017년~2020년 9월까지 각각 100여곳이 넘는 납품업자 대상으로 제품 가격이 경쟁 온라인몰에서 하락하면 판매 가격 인상을 요구해 가격을 맞추거나, 마진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광고 구매를 요구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이번 사건이 본질적으로 LG생건같은 독점 납품업자들이 비싼 공급가를 쿠팡에 요구하면서 불거진 일이라고 말한다. 제품 직매입에 따른 당일∙익일 로켓배송 등 고비용 구조가 수반되는 쿠팡 고유의 유통구조상 납품업자들이 다른 유통채널에 납품하는 가격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쿠팡을 공정위에 최초로 고발한 LG생활건강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은 납품업자 중 하나로 분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은 2019년 LG생건 제품을 시장가 대비 비싸게 납품 받았다. 신생 유통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의 다양한 제품을 보유해야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의 납품이 진행됐다. 이때 일부 제품 가격이 타 유통업체 판매가 보다 높은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쿠팡측 주장이다. 실제 한 제품은 타 유통채널 판매가가 5900원에 불과한데 쿠팡에 공급한 가격은 1만원이 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는 최초에 납품업자들이 쿠팡에 요구한 제품 납품가의 적정수준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품질 차이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쿠팡이 제품을 직매입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상품으로 팔기에 손해가 컸다"고 말했다.
쿠팡은 당시 LG측 주장에 대해 "쿠팡 매출 6조7000억원 가운데 LG 매출 비중은 1%대이며, 어떠한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경제적 이익 제공이나 배타적 거래, 부당 반품도 없었으며 오히려 비싼 LG의 납품가에 손해를 봤다"고 반박했다.
◇시장 점유율 1위 대기업이 후발 유통기업을 신고했는데, 쿠팡이 '우월적 지위'?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번 공정위 발표를 두고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갸우뚱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쿠팡을 갑질로 고발한 LG생건의 경영실적이 악화하거나, 쿠팡 매출 의존도가 높아 직원 고용이나 투자에 악영향을 끼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장점유율 1위의 독과점 대기업이 '납품기업'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유통 후발주자를 길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LG생건은 줄곧 업계 선두자리를 지켜왔다. 문제가 불거진 2019년에도 LG생건은 생활용품 시장점유율 1위(33.4%)를 유지했다. 대표적인 국민 위생용품인 치약은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최근엔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화장품업계 1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당시 쿠팡은 여전히 시장에 도전하는 도전자였다. 2019년 닐슨코리아 조사(구매금액 기준)에 따르면, 쿠팡의 시장 점유율은 18.1%로 G마켓(19.1%), 11번가(18.3%)에 이어 3위였다. 2021년에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신세계를 포함하면 쿠팡의 시장점유율은 네이버(18%), 신세계(15%)에 이어 3위(13%)다. '만년 3위' 쿠팡이 산업의 1~2위를 독식 중인 LG생건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규모 유통업법 제3조에 따르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납품업체의 경우, '거래 의존도' '대규모 유통업자와 납품업자의 사업 능력 격차' '유통시장의 구조'에 따라 우월적 지위에 있는 여부를 판단한다. 이번에 공정위가 발표한 쿠팡의 '우월적 지위' 근거는 국내 소비자의 70%가 모바일 앱으로 쇼핑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납품업체의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따졌는지는 미지수다.
실제 다양한 유통채널을 보유한 LG생건의 2019년 쿠팡 매출 의존도는 1~2% 수준이었다. LG생건의 지속성장세에 '쿠팡 철수'는 무의미했다. 쿠팡에서 철수한 2019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실적(1조 1764억원)을 올렸기 때문이다. LG생건이 2017~2020년까지 4년간 거둔 영업이익(4조3666억원)은 2010년 창립 후 쿠팡의 누적 적자 4조5000억원(지난해 말 기준)에 맞먹는다.
◇과거 대형마트 급부상 때도 대기업들 돌연 납품중단…"쿠팡도 악순환 피해가지 못해"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독과점 제조업체의 신유통 채널 견제는 30년간 지속된 악순환의 굴레를 쿠팡도 피해가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LG생건처럼 힘을 가진 대기업들의 유통기업 길들이기는1990년대부터 빈번했다. 지난 1994년에도 이마트 등 대형마트 중심의 신흥 유통기업이 급부상하면서 판매 가격 결정권에 대해 각종 제조업체와 대리점, 백화점들이 반발했다.
당시 농심은 이마트에 라면을 공급하지 않다가 프라이스클럽에 제품을 공급했는데, "판매가는 우리가 결정한다"며 가격 인상을 요구한 프라이스클럽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프라이스클럽과 판매 가격 결정권에 대해 장기간 다투다 자사 전 제품의 공급을 못하도록 지시한 적도 있다.
인터넷 발전으로 온라인 커머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04년 한 인터넷 쇼핑몰에 지속적으로 가격인상을 요구하다 일방적으로 제품 공급을 중단해 공정위 제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은 이처럼 대기업 독점업체들이 지배한 유통시장에서 중소기업에 진입장벽을 낮춰 소상공인 판매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올 2분기 기준 쿠팡과 거래하는 업체의 80%는 소상공인이며, 입점한 소상공인 매출은 전년 대비 87% 오르며 크게 성장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도 납품업체의 영향력과 크기에 따라 제품 납품을 받은 이후에도 불합리함을 시정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며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모두 합리적인 시장가격을 만들어가는데 지혜를 모으는 법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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