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며,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낼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말은 완벽한 문장으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마음이 전달된다. 나는 가을에 나온 귤을 먹을 때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모두 작가로 만들 참이었는지, 꽤 자주 동시를 써오라고 했다. 기한은 늘 '내일까지'였다. 거스르는 법을 몰랐던 나는 숙제를 하기 위해 억지로 글을 짜내거나 예쁘게 꾸며 쓰기 위해 애를 먹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마감의 고통'을 몸소 체험한 듯싶다.
담임선생님의 얼굴과 성함도 기억나지 않고, 내가 꼬박꼬박 제출했던 숙제도 남아 있지 않지만,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바로 '가을 귤'에 대한 동시이다.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빈집 문을 여는 일은 매 순간 공허했다. 다른 즐거움이 있다면 엄마가 챙겨 놓은 간식이었다.
하루는 귤 한 바구니가 상 위에 소복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누가 오냐고 물었다. "무슨 날이긴, 우리 딸 귤 좋아하잖아.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엄마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가을에 나온 귤은 비싸다고 했는데, 귤이라면 언제라도 양껏 먹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한 엄마가 한아름 사온 것이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귤껍질을 깠다. 귤 향이 가을 햇살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귤의 맛을 글로 옮겼다.
귤 맛은 시지만 달콤하며, 시원하지만 따뜻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귤 한바구니가 집에 있을 뿐인데, 빈집을 가득 채운 듯 꽉 찬 기분이라는 내용을 적었다. 시를 쓰는데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그날은 마감의 고통으로부터 가뿐히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나의 시를 반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단지 시를 읽어주었을 뿐인데 '그랬구나. 너의 마음이 그랬어'라며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시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나의 진솔한 마음이 그대로 시가 되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라고 자꾸만 반짝인다. 봉인해 버리고 싶은 마음의 말을 발현시키며 삶을 위로한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처럼 그때 나는 분명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주 잊으며 살아간다.
가을에 나온 노란 귤을 먹으며 시를 생각한다. 피었다 졌다 하는 꽃처럼, 여름날이 져버리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시(詩)가 다시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그럼 올 가을이 좀 더 따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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