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 도서관을 가다-영남대] 중국어 학습서 '중간노걸대언해'

신승용 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中상인 4명이 주고받은 회화체 문장…당대의 사회상 엿볼 수 있어
체벌·부정행위 관한 기록도 '박통사언해'와 대표적 교재

중간노걸대언해의 펼친 모습. 영남대 제공
중간노걸대언해의 펼친 모습. 영남대 제공

영남대 도서관에 '중간노걸대언해'(1795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료를 찾다가 한문본 '노걸대'(15세기 갑인자 복각본)도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문본 '노걸대'는 '번역노걸대'(16세기 초), '노걸대언해'(1670년), '신석노걸대언해'(1763년), '중간노걸대언해'(1795년) 등 이렇게 여러차례 번역되는데, 이 중에서 영남대 도서관에는 1795년에 번역된 '중간노걸대언해'가 소장돼 있다.

당시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가 더러 만들어졌는데, 이 책은 '박통사언해'와 함께 중요한 중국어 학습서였다.

책의 내용은 중국에 고려 상품을 팔러 가던 고려 상인 3명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요동성 출신의 중국 상인과 동행하면서 일어난 일을 회화체로 기록한 것이다. '노걸대'에서는 고려 상인이었는데, 이후 언해본에서는 조선 상인으로 바뀌어서 나온다. 유학(儒學)을 배우는 과정, 인삼 등 고려의 특산품에 관한 대화,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법, 의원(醫員)을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방법 등 당대의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대화들이 등장한다.

중국어를 배우는 동기에 대해서도 나와 있는데, 대화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상인: 당신은 조선 사람인데 중국어를 배워서 무엇을 할 겁니까?

조선 상인: 지금 조정이 천하를 통일하였으므로 가는 곳마다 중국어를 쓴다. 우리 조선말은 조선 땅에서만 쓰고, 의주를 지나 중국 땅에 가면 다 중국어를 쓴다. 만일 누가 한마디 말을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보겠습니까?

당시 학당에서의 교육 과정 및 교육 방식에 관한 대화도 나오는데, 현재는 금기시되는 체벌이 당시에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저녁에는 스승 앞에서 글 외우기를 한다. 이때 스승 앞에서 제비뽑기를 해서 글 외우기를 하는데, 외운 사람은 스승이 면첩(免帖) 하나를 주고, 외우지 못하면 당직 선비를 시켜 엎드리게 하고 세 번 때린다. 면첩에는 '세 번 맞는 것을 면하라.'라고 쓰여 있고, 스승이 수결(手決)을 해 둔다.

잘하면 면첩을 주어서 다음에 못하더라도 체벌을 면하게 해 주었다는 것인데, 계속 잘하면 한두 번 못하더라도 체벌을 면할 수 있는 방식이다.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면첩과 체벌을 각각 당근과 채찍으로 적절히 활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스승의 수결이 필요했던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어쩔 수 없이 부정한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승용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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