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망언과 용담(冗談)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선거는 입후보자가 유권자를 말로 설득하는 자리다. 연설과 토론으로 철학과 비전을 평가받는 무대다. 공약과 정책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후보와 아무 말 잔치로 유권자를 우롱하는 후보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그런 선거는 하나 마나다.

어제 일본 중의원 선거가 마무리됐다. 결과를 떠나 자민당 일당 체제하 일본 정치의 폐단과 모순이 얼마나 깊은지 분명히 드러났다. 특히 '망언 제조기'로 불리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홋카이도 호타루시 거리 유세는 한마디로 용담(冗談·군소리나 희롱하는 말) 잔치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세 도중 "얏카이도(귀찮은) 쌀로 불리며 잘 팔리지 않던 홋카이도 쌀맛이 훨씬 좋아졌는데 모두 온난화 덕분이다"며 이죽거렸다. 홋카이도 사회가 크게 반발했고, 언론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추궁하면서 아소의 췌언에 화살이 쏟아졌다. 아소뿐 아니라 자민당 인사들의 망언도 마찬가지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의 후보 단일화에 대해 "일본을 공산화하려는 책동"이라며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선거라지만 자민당의 정치 철학과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정치판이라고 이와 다를까.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은 선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단골 메뉴다. 그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진영에서 선거운동에 비협조적인 당협위원장을 겨냥해 '지방선거 공천권 박탈 운운하며 협박했다'는 내부 폭로가 터져 나와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정치권의 이런 망언과 용담에 비하면 지난 2014년 11월, 80대의 노령에 병환 중임에도 후텐마 미군기지 현외 이전 문제로 시끄러운 오키나와를 방문해 연설한 일본 원로 배우 스가하라 분타(菅原文太)의 연설은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전해진다. 국내 한 유튜버가 올린 당시 영상에서 스가하라는 "정치는 국민을 굶기지 않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며 민생과 평화를 강조했다. 이 연설 후 한 달이 채 안 돼 그는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은 국가가 달라도 모두 같은 인간이다"는 그의 발언에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자유,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 시대정신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기성 정치인들 말 속에는 그런 힘과 감동이 전혀 없다. 오로지 몰가치와 경박함만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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