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 칼럼] 윤석열의 첫 번째 과제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가끔 모르는 분에게서 이메일이나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TV 논평이나 신문 칼럼의 한 대목을 지적하며 비판이나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진의를 설명해 보아도 그런 분들은 내 말을 경청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설득이 어렵다는 걸 알고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만다. 이제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며 진지한 대응을 회피하는 기술로 발전(?)했다.

그런 항의를 받고 나면 솔직히 처음에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내 진의를 왜곡한다는 야속한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비판이 이해될 때가 있다. 전후 사정을 짧게 요약하다 보니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해석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정치 입문 이후 가장 가슴이 아팠던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왜 저런 소리를 하느냐'고 국민들께 비판을 받게 됐을 때"라고 답했다. 윤 후보는 "제 마음과 (국민이) 받아들이는 것과의 차이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배우는 과정이 어려웠다"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받아들이는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했기 때문에 후회될 게 한두 개이겠느냐"면서 "후회보다는 국민들께 사과드리고 질책받을 건 받고 책임져 나가겠다"고도 했다.

같은 말이라도 평범한 시민의 언어나 검사로서 사용하던 언어와 정치인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은 사람의 뼈아픈 고백이다. 이제는 말을 하는 본인의 입장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정치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진술이기도 하다.

윤 후보는 당원 투표에서 21만 표를 얻어 홍준표 의원을 2배 가까이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선 37.94%로 48.21%의 홍 의원에게 10%포인트 이상 뒤졌다. 이른바 역선택 영향도 일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보다 당원들 힘으로 대선 후보가 됐다는 사실은 본선에서 약점일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일방적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홍 의원과의 승부에서 예측불허의 각축전을 벌였다. 국민 사이에서는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보다 훨씬 높은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격차를 벌리지 못한 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윤 후보 본인의 실수 혹은 실언 때문이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주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 대구 민란 등 윤 후보의 실언은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그와 함께 손바닥 왕(王) 자,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발언, '개 사과' 논란 등 연이은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보며 윤 후보의 자질과 리더십에 의문을 갖게 된 국민이 많아진 것이다.

"진의가 왜곡됐다"는 게 윤 후보 측의 단골 해명이었다. 앞뒤 맥락을 자르고 논란을 벌인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참 후에야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며 책임을 돌린 것 역시 현명하지 못했다"며 "정치인이라면 '자기 발언이 늘 편집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정치적 언어 사용의 미숙함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후보 확정 후 '가슴이 아팠던 순간'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윤 후보의 자각에도 해당한다. 그간의 좌충우돌이 정치의 '엄연한 현실을 배우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하고 본인의 가장 큰 약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말이다. 많은 평론가가 말하듯 윤 후보의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지금부터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헤쳐 나가야 할 험난한 삭풍의 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압도적인 민심을 국민의힘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여당도 싫지만 야당도 믿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중도층 민심을 견인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문제를 푸는 가장 주도적인 역할은 대선 후보 윤석열이 맡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실수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논쟁은 회피해도 된다. 하지만 이제 윤 후보는 실수할 자유, 회피할 자유조차 없는 정치인이 되었음을 숙고하는 것에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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