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존속살인까지 낳은 가족 내 간병 고통, 국가는 방관하지 말라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퇴원시킨 뒤 굶겨 숨지게 한 20대 아들에 징역 4년형이 선고됐다. 최근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부른 이른바 '간병 살인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이 사건은 중환자 간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호 및 복지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은 중환자 가족이 생기는 순간 엄청난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치료비보다 간병비 부담이 훨씬 더 크고 현실적 위협이다. 하루 12만 원 안팎, 한달 300만 원이나 드는 간병비를 대지 못해 직장마저 그만두고 가족 환자 돌봄에 매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학업 및 취업도 녹록지 않은 마당에 가족 간병까지 책임져야 하는 청년, 즉 '영케어러'가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심각하다.

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병비는 건강보험에서 여전히 비급여 항목으로 남아 있으며,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 중인 가사 간병 방문 및 복지 간병사 파견 등 일련의 지원사업은 실질적 도움이 못 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기약 없이 가족 환자를 돌보다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하거나 무기력감·우울증에 빠지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부는 실태조차 파악 못 하고 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장기간 간병 끝에 존속살인 또는 동반자살 등 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간병 문제를 가정 내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간병이 요양시설 등 시설 중심에서 재가 돌봄으로 전환되는 추세인 만큼 그 짐 역시 국가가 지는 게 옳다. 노인 장기요양제도 수혜를 위한 요양등급 문턱부터 우선 낮춰야 한다. 정부 차원의 다각적 대책을 속히 마련하고 국회는 관련 대책을 입법화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코로나19 방역지원금을 표나 좀 얻어볼 요량으로 뿌리겠다고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혈세는 이런 복지사각지대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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