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일 날씨는 무조건 맑을 겁니다

권기철 화가
권기철 화가

제야음악회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예매를 하면서 악화되는 코로나 상황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짐작대로 아쉬운 일이 생긴 것이다. 이맘때 늘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만나는 건 한해를 윤택하게 건너가고 건너올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송년음악회나 신년음악회 공연이 있는 날이면 넘쳐나는 감정의 과잉만큼이나 들떴지만, 올해는 작업실에서 오디오와 더불어 차분히 대신할 관심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고전음악, 그러니까 나의 클래식 입문기라고 해야 하나, 팝에서 클래식으로의 확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두 개의 기억에 서로 다른 두 곡의 음악이 있다. 첫 번째가 단연 '바흐'다. 대학 선배의 화실에서 들었던 현악기의 기억. '브란덴브르크 협주곡 4번'이 그 곡이다. 그날은 실로 짜릿짜릿하게 귀에 터널을 뚫어준, 마치 작은 빛 같은 변곡점이 되었던 날이다.

썩 괜찮은 쇳덩어리(오디오)와 큼직한 스피커에 귀를 쭉 빼서 헌납해 버렸으니 그럴 만했다. 턴테이블 위에 레코드판이 돌고 눈만 껌뻑껌뻑하며 감상하던 때의 황홀이라니. 이 야릇한 경험의 출발이 바로 '바흐'였다. 그리하여 고전음악에 대한 애정은 현악기와 관악, 성악의 무대로 가리지 않았고 시향 연주를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이십대 대구 동산동, 선배의 꼬질꼬질한 화실에서 나는 '바흐'를 만나면서 150cm에 겨우 이른 슈베르트의 키에 관심이 갔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거처에서 20년 이상 가난과 냉소를 흘렸다는 에릭 사티에게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클래식은 내 두근거리는 심장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때 이렇게 썼던 글을 다시 옮기니 쑥스럽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그저 그때까지 나의 귀는 상식에 머물다가 다소 예민한 파장을 섭취한 귀로 바뀐 것 같다. 그리하여 소리에 올라앉아 그림이 앞서기도 뒤지기도 하면서 "세상이 고달파 나는 음악을 듣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려와 내 그림에도 붉은 각혈을 꺽꺽 토하며 무던히 그림으로 옮겨왔다.

두 번째 기억은, 무척 오래전 '오늘의 날씨'의 시그널로 쓰인 헨델의 '하프협주곡'이다. 하프의 피치카토는 같은 구조를 반복해서, 투명하고 청명해서 왠지 날씨는 카랑카랑할 것 같고 구름은 하늘에서 띄엄띄엄 유영할 것 같아 "내일 날씨는 무조건 맑을 겁니다"로 각인되는 멜로디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음악은 세상의 모든 유혹에도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해준 매혹이었다. 레코드판의 자켓을 이리저리 뒤집어 둥근 아날로그의 잡음까지 흡수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다 쉬는 시간에 듣는, 그야말로 작업의 휴지부로 꼼지락거리며 즐기는 취미가 된 지 오래였다. LP판의 야릇한 냄새와 돌아가는 반들반들한 빛의 기억은 '정말 괜찮은' 출발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송년음악회에서 장중한 메시아가 울려 퍼지면 '한해를 또 온전하게 넘겼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해가 바뀌어 신년음악회의 커튼콜이 반복되다, 연주 사이사이 박수치며 '라데츠키 행진곡'을 앙코르곡으로 듣는 건 더욱 신나는 일이다. 그 곡과 더불어 새해가 시작되면 괜히 힘찬 한해의 출발을 하는 것 같아, 설렘과 기대로 꽉 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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