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내 아들의 부모가 되어주세요…'노웨어 스페셜'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서른 네 살의 남자. 그는 창문닦이다. 그에겐 4살 아들이 있다. 갓난아이일 때 엄마는 떠나 소식도 없다.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것은 모두 내가 닦는 창문 너머에 있다. 그래도 아들이 있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 삶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스틸 라이프'의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떠나보내던 공무원의 이야기를 그린 '스틸 라이프'처럼 '노웨어 스페셜'도 죽음이 주제다.

시한부 인생의 존(제임스 노튼)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이 새 부모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아들과 함께 입양을 원하는 이들의 가정 방문을 한다. "아들이 착해요. 말도 잘 듣고." 여러 가족을 만나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점점 그의 몸은 쇠락해 간다.

'노웨어 스페셜'은 죽음을 준비하는 젊은 아빠의 일상을 TV의 휴먼 다큐처럼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존의 하루 일과, 그리고 퇴근 후 아빠와 아들의 소소한 만남이 전부다. 왜 이런 시련을 주냐며 하늘에 삿대질도 할 만하지만, 그는 참는다. '진상 고객'의 집 유리창에 계란을 던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애잔함에 더 가슴이 저려오는 영화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은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풀 몬티'(1997)의 제작자로 유명하다.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마을의 남자들이 스트립쇼로 일거리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무기력한 삶에서 탈출하려는 남자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이다. 영화에서 그들은 환호를 받고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 영국의 어두운 현실을 유쾌한 이벤트로 승화시켰다. '스틸 라이프'에서는 외로운 죽음을 지켜주는 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노웨어 스페셜'에서 존을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옆집 노파가 위안을 주지만, 그녀 또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이다. 복지사인 쇼나(에일린 오히긴스) 또한 열심히 마이클의 새 부모를 찾는데 앞장서지만, 직업적 도움뿐이다.

마이클을 맡길 만한 가정은 나타나지 않고, 존의 몸은 점점 악화된다. 소파에서 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얼굴은 초췌해지고 유리창을 닦기 위해 사다리를 타기도 어려워진다.

아빠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의 흔들리는 눈빛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공룡의 죽음을 그린 책도 읽지 말았으면 싶지만, 아들은 이미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빠와의 이별도 어느 정도 예견한다.

아빠의 34번째 생일. 아들은 케이크에 34개의 촛불을 꽂는다. 그리고 남은 초 한 개. 다시 꽂을 날이 있을까. 작은 빨간 초. 아빠는 아들을 위해 '기억의 상자'에 그 초를 넣어둔다. 함께 더 하지 못한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해진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한 장면

파솔리니 감독은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전 아들을 위해 새 가족을 찾는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까지 맡았다. 최대한 절제된 감정으로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감독은 대사 없이 보여 주는 무덤덤한 일상에서 관객의 깊은 공감을 건져 올린다. 유리창 너머 장난감으로 가득한 아이의 방을 보여준다거나, 쇼 윈도우에 진열된 화려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풍요로움과 벽을 둔 주인공의 처지를 비유한다. 존의 직업인 창문닦이를 통해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도시 하층민들의 가난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존 또한 어릴 때 위탁가정을 전전했던 설정을 통해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의 대물림을 담기도 한다.

'특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제목의 뜻처럼 죽음을 앞둔 남자의 슬픔과 아픔을 그리지만, 그럼에도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아빠를 통해 '삶은 지속된다'는 큰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존을 연기한 제임스 노튼은 차기 제임스 본드로 거론되는 배우다. 단단한 몸매에 자신만만한 눈빛을 가진 배우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에서 첫째 메그와 결혼한 존 브룩을 연기하기도 했다. '노웨어 스페셜'에서는 슬픔을 눈동자에 가득 담은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간신히 웃음을 띠고 아들을 바라보는 마지막 표정 연기가 인상 깊다. 벨파스트 지역에서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아역 다니엘 라몬트의 연기 또한 실제 아들같은 느낌을 준다.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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