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기억, 나를 지키는 힘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민주공화국에서 선거는 국민이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할 '새 집권 세력'을 정하는 일이다. 동시에 '현재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신생 국가가 아닌 한 이 둘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다. 그래서 유권자는 후보자와 그가 속한 정당의 '공약'뿐만 아니라, 현재 권력자와 그가 속한 정당의 '실적'을 엄중히 평가해야 한다. 공약 실현 여부는 알 수 없고, 실재(實在)하는 것은 현 집권 세력의 '실적'이기 때문이다.

'실적'은 보지 않고, '공약'만 본다면 선거는 반쪽짜리가 된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도 말만 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정치인은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좋은 정치를 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과거 한 번의 잘못을 거듭거듭 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잘못을 오늘 벌하고, 오늘 선행을 오늘 칭찬하는, 지극히 타산적이고 공정한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나치 만행이 저질러진 장소를 그대로 보존하기를 원한 것도, 중국의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쓴 것도, 우리가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기억하기' 위함이다. '기억하자'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끝없이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치 만행의 장소를 보존함으로써, 황제와 권력자의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던 소녀들을 기억함으로써, 다시는 나치가 등장하지 않도록, 불초의 소생이 되지 않도록, 여성 인권 유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진보는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지난 달력을 넘김으로써 모든 과거를 잊었다면 인류에게 진보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기억하기'는 과거를 벌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과 내일을 구원하는 데 방점이 있다.

3월 9일 있을 제20대 대선은 후보들의 '공약'보다 문재인 정부 5년을 평가하는 데 더 큰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장밋빛 미래는 '실적'의 결과물이지 '공약'에서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기억하는 것이, 바른 내일을 여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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