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득 동네책방]<52> 경주 책방 ‘북미-Book me’

2018년 복원된 경주읍성 향일문이 눈 앞에
대구경북 유일의 영화서적 전문 동네책방
영화, 영어원서,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도 병행

경주읍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책방
경주읍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책방 'Book me'. 김태진 기자

책방에 들어서자 경주읍성이 가깝게 들어온다. 2018년 복원됐다는 향일문이 코앞이다. 겨울바람이 제아무리 불어도 따신 볕만 소복이 모여 책방 안은 뜨겁다. 정남향 통유리로 몰아쳐온 햇볕 몇 줌을 캐올 수 있을 만큼이다. 1월 한겨울 2층 책방에서 내다본 바깥은 평화롭다.

영화서적 전문 동네책방이다.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다. 벽면 구석구석이 각종 영화 포스터, DVD, 원작 소설로 차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각본집도 사이좋게 어깨를 걸치고 있다. 영화와 관계없는 책이 거의 없다. 취향이 비슷한 이들이 찾아오고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책을 추천해주고 읽으니 모든 게 '영화'로 수렴하는 것도 당연하다.

2020년 12월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일하다 코로나 시국에 부모님이 계신 경주로 내려온 김영미 씨가 운영한다. 책방 이름 'Book me(북미)'는 자신의 이름에서 왔다. 6070의 '영희'만큼이나 흔한 이름인 '영미'를 기술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풀이하자면 '나를 책으로 펴내다'쯤 된다. 웬만한 명사들은 동사의 뜻도 갖고 있는데 Xerox는 '복사하다', Text는 '메시지로 써 보내다'는 뜻이 있다. Book도 '예약하다', '책을 펴내다'는 뜻이 있다. 김 씨가 커피 가게를 시작했다면 아마도 'Brew me'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미 씨는 영어를 매우 잘 하는 사람이다. OTT와 케이블 TV 채널의 외화를 번역하는 게 본업이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도 그를 거쳤다. 책방은 부업인 셈인데 편한 옷차림으로 책 한 권 들고 나와서 읽다가 갈 수 있는 곳, 눈치 보지 않고 앉아서 오래 일하더라도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의 책방으로 이어졌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 격이었고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와서 마신다. 오래 앉아 작업하는 이들이 적잖이 보인 까닭이었다.

영화 관련 책들로 가득한
영화 관련 책들로 가득한 'Book me' 내부. 김태진 기자

1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했다는 그는 평소 책방을 즐겨 찾았던 게 지금의 자산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했었는데 동네책방 40여 곳을 가본 것 같다. 제각기 특성이 있는 책방이 좋았다"며 "우리나라에도 최근 들어 동네책방이 많이 생겼는데 큐레이션이 비슷했던 점은 아쉬웠다"고 했다.

영화를 많이 보면 만들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텐데 어떠냐고 물었다. 시간이 될 때 시나리오는 쓰려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극장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뿔싸, 그의 서가에 꽂힌 천명관의 '고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될 것 같은 소설이면서 자신의 꿈과 연관된 소설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가의 책들은, 소설 '고래'에서 대극장을 짓게 될 춘희의 벽돌처럼, 책방지기에게 단단한 버팀목이 될 것처럼 다가왔다.

영화서적 전문 동네책방이니 자연스레 보기 힘든 영화, 이를테면 유럽, 남미를 포함한 제 3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도 꾸려간다. 영어 원서 모임,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도 병행한다.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맥주도 판다. 영맥, 책맥이 가능한 곳이다. 경주시 북성로 103-1 2층이다. 문의 010-3600-7840

햇볕 몇 줌을 캐올 수 있을 만큼 볕이 좋은 책방
햇볕 몇 줌을 캐올 수 있을 만큼 볕이 좋은 책방 'Book me'.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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