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끝)] 소설- (4)쓰다가 부딪히는 것

소설의 전체 윤곽이 잡혔다고 해서 바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체가 없는 구상을 문자로 구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제목이다. 제목은 작품의 축약적 표현이고 메뉴판에 실을 얼굴마담이다. 제목이 주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 눈길도 끌면 그보다 좋을 순 없다.

허나 그런 제목을 찾기 쉽지 않다. 두루 갖춘 제목을 뽑기 힘들면 가지치기를 해서 선호하는 줄기만 남기는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손쉬운 선택지는 주인공 이름을 따는 방법이다. 무성의한 것 같지만 주인공 이름에서 제목을 딴 경우가 적지 않다.

제목을 정하고 첫 문장을 쓰다가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구상 중인 서사를 누구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끌어 가는가, 즉 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누구의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며 서술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흔히 관점 또는 시점으로 다뤄진다. 이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서사가 난삽하게 엉켜 그 의도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득력이나 감동을 기대할 수도 없다.

시점은 기본적으로 '나'의 관점이거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 즉 1인칭 시점이거나 3인칭 시점이다. 창의나 필요에 따라 약간의 변용이 존재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 등은 모두 파생된 변용이다. 각 시점의 장단점을 파악해본 후 그 작품의 성격에 맞는 시점을 채택하는 것이 맞지만, 초심자라면 1인칭 주인공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일기나 수필처럼 편하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줄거리만 서술한 걸 소설이라 할 순 없다. 인물, 사건, 배경 등에서 그 이미지와 현상을 감각적으로 서술하는 묘사가 필요하다. 스토리라인을 서술하는 것만으로 주된 메시지를 전달할 순 있지만 그것만으로 재미와 감동을 주긴 힘들다. 읽는 맛을 좌우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묘사가 들어간 글이라야 실감이 나고 설득력도 생긴다. 인물, 성격, 심리, 환경 등이 살아나려면 눈앞에서 보듯 생생한 디테일 묘사가 필수적이다.

데커레이션 여부에 따라 동일한 방도 완전히 다른 방으로 변모하듯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묘사가 빈약하면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며, 묘사가 지나치면 너저분하고 지겹다. 묘사가 있어야 할 곳에 없으면 스피디하긴 하나 자칫 비약으로 비칠 수 있고, 묘사가 넘치거나 늘어지면 풍성하고 현학적인 느낌을 주긴 하나 현실감과 진정성이 떨어지고 보편적 공감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한 술에 배부를 순 없고 글쓰기에 왕도가 따로 없다. 글쓰기 실력은 그 흘린 땀과 소비된 원고지 분량에 비례한다. 소설 창작도 예외일 수 없다. 조급한 마음과 근거없는 오만을 버리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실력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 (끝)

오철환 소설가
오철환 소설가

오철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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