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스포츠 예능’의 무한확장

코로나19‧리얼리티…‘스포츠 예능 전성시대’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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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올 탁구나!'의 한 장면. tvN 제공

2019년부터 조금씩 고개를 들던 '스포츠 예능' 트렌드가 이제는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로운 스포츠 예능들이 다양한 종목으로 시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포츠 예능의 전성시대를 불러온 요인은 뭘까.

◆현정화의 27년만의 도전…'국대는 국대다'

한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레전드 스포츠 스타들과 현역 국가대표가 대결을 하면 누가 이길까. MBN '국대는 국대다'는 바로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시작한 스포츠 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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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의 한 장면. MBN 제공

그 첫 번째 레전드 주인공으로 출연한 현정화는 그래서 27년 만에 세계 랭킹 8위 현역 탁구 국가대표 선수인 서효원과 탁구 대결을 하게 됐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그리고 영화 '코리아'가 다뤘던 1991년 남북 단일팀 우승의 주인공으로 '레전드'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현정화지만, 은퇴 후 27년 만에 그것도 50대의 나이에 겨우 60일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현역 국가대표와 한 판을 벌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대는 국대다'는 그 제목에 걸맞게 한 번 레전드는 영원한 레전드라는 사실을 '독종', '악바리'로 불렸던 현정화의 현역 선수들 못잖은 준비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놀랍게도 신체 나이가 23세로 나온 현정화는 지금도 잘 관리된 몸으로 몸이 기억하는 기술을 다시 깨워냈고, 부족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훈련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열린 대결. 놀랍게도 현정화는 현역 국가대표 서효원 선수를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완승을 거뒀다. 서효원 선수는 "현정화는 현정화다"라며 역시 '국대는 국대다'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국대는 국대다'는 레전드와 현역의 대결이라는 스포츠의 맛에, 다양한 예능의 양념을 더했다. 레전드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과거 영상들을 소환해 그 때의 상황을 회고하는 토크쇼에, 특별히 초대한 또다른 동료 레전드들의 코치를 받는 훈련 과정의 관찰카메라, 그 과정에 포함돼 있는 먹방의 요소도 빼놓지 않는다.

여기에 부모 등 가족이 들려주는 레전드의 성장담이 전하는 '비화 공개'도 들어있다. 그래서 이 다양한 예능의 틀로 전해주는 일상과 이야기를 따라가면 레전드가 어떤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위치에 서게 됐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예를 들어 현정화가 국가대표 시절 쓴 훈련일지에는 당시 그가 가졌던 부담감과 책임감은 물론이고 그래서 갖게 된 목표에 대한 남다른 의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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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의 한 장면. MBN 제공

'국대는 국대다'는 스포츠 예능이 갖는 스포츠의 묘미 이외에도 정서적으로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현정화처럼 이제 현역에서 물러난 나이에 의기소침할 수 있는 중장년들에게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하는 부분이다. 50대의 나이에도 엄청난 승부욕으로 현역 국가대표를 끝내 이겨버린 현정화는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그 자체로 적잖은 위로와 희망을 선사한다. 주 시청자층의 연령대가 높은 MBN으로서는 이러한 정서적 포인트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스포츠 예능들은 과거의 레전드들이 다른 분야의 스포츠에 도전하거나, 혹은 스포츠와 상관없던 연예인들의 스포츠 도전기를 주로 다뤄왔다. 하지만 '국대는 국대다'는 스포츠 베테랑이 해당 분야의 스포츠에 다시 도전한다는 색다른 선택을 했다. 다음 도전자는 이제 환갑에 가까운 '씨름 레전드' 이만기다. 현역 씨름선수인 허선행과 일전을 벌일 그의 도전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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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올 탁구나!'의 한 장면. tvN 제공

◆배드민턴에 이어 이젠 탁구?…'올 탁구나!'

한편 최근 스포츠 tvN에서 새롭게 내놓은 '올 탁구나!'도 스포츠 예능이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라켓보이즈'를 통해 배드민턴을 소재로 스포츠 예능에 뛰어들었던 tvN이 이번에는 탁구에 도전하는 것. '국대는 국대다'에서 첫 번째 레전드로 현정화를 초대해 탁구대결을 벌일 만큼 탁구는 스포츠 예능에서 '되는 스포츠'로 인식되는 스포츠다.

KBS '1박 2일'에서 복불복으로 하던 '저질 탁구'가 지금도 레전드 영상으로 소비되고 있고,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동호인 스포츠 종목 중 가장 화제가 됐던 스포츠가 바로 조달환 같은 '탁신'을 부각시켰던 탁구였다.

그래서 '올 탁구나!'는 강호동과 은지원을 팀으로 나눠 대결구도를 세우면서 '1박2일' 시절 탁구 복불복으로 삭발을 당했던 은지원의 영상을 전면에 깔았다. 마치 은지원이 강호동과 벌이는 '리벤지 매치'처럼 구도를 만들어낸 것. 하지만 '올 탁구나!'는 이러한 예능적인 재미로 일단 시선을 잡아 끈 후, 오디션 방식으로 팀원들을 뽑아 팀을 꾸리는 과거 '우리동네 예체능'의 색깔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이지만 놀라운 기량을 가진 강승윤이나 '슈퍼밴드'로 익숙한 신예찬, '강철부대'의 이진봉, '펜트하우스'의 박은석 등이 팀에 합류하며 기대를 높였다.

'라켓보이즈'도 그랬지만 '올 탁구나!'는 탁구라는 스포츠 종목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그 과정을 담는 출연자들의 매력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이진봉은 '강철부대'와는 사뭇 다른 예능적 캐릭터로 강호동의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고, '슈퍼밴드'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신예찬은 배운 적 없이도 기본기 가득한 탁구실력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먼저 강호동과 은지원이 각각의 팀을 대표해 내세웠던 것이 '성장드라마'와 '젊은 탁구'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강호동은 출연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 성장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이고, 은지원은 프로그램의 성공이 젊은 세대들을 탁구의 세계로 인도해 탁구인구의 저변을 실제로 넓히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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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올 탁구나!'의 한 장면. tvN 제공

◆스포츠 예능 도전은 계속된다

사실 코로나19가 막 터지기 시작했던 2019년부터 스포츠 예능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KBS '씨름의 희열'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색깔을 더해 씨름을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해석함으로써 그 대중적 관심을 끌어모으며 화제가 됐고, JTBC '뭉쳐야 찬다'가 '뭉쳐야 쏜다', '뭉쳐야 찬다2'로 지금껏 이어지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적 저변이 넓어진 골프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고, 마치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스포츠에 여성들이 참여함으로써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같은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이 흐름은 이제 JTBC '마녀체력 농구부'같은 농구하는 여성들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대는 국대다'나 '올 탁구나!'같은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스포츠 예능의 바람이 올해도 계속 불 것이라는 걸 선제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국대는 국대다'같은 스포츠 예능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점점 많아지는 레전드 스포츠 스타들을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묶어낸 프로그램들이 나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코로나19나 여성, 리얼리티 같은 예능 프로그램 자체에 요구되는 새로운 변화의 소재로써 스포츠가 부상한 결과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오히려 거꾸로 불러일으킨 건강과 생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나, 그간 예능에서 소외되곤 했던 여성들을 오히려 스포츠 분야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과 매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지점이 그것이다.

물론 점점 리얼리티화되면서 진정성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스포츠만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없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모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스포츠는 예능의 중요한 한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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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예능 '올 탁구나!'의 한 장면.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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