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 포스코와 막걸리 맛

포스코, 지역사회 상생의 역사와 지지를 쉽게 내던지려 해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 기업이 오랜 시간 성장하면 경제를 넘어 그 사회의 중심이 된다. 기업과 주민들이 함께 쏟은 피와 땀, 갈등과 고난, 성취와 환희가 켜켜이 쌓이며 동반자로서의 끈끈한 정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도지사에 취임 후 '기업을 위한 경상북도'를 선언했다. 직원들에게 "감방 안 가면 다 도와주라"고 지시하고, 도청 1층에는 가로 20미터짜리 초대형 전광판을 설치해서 도내 기업을 소개했다. 그 전광판에 당당하게 첫 번째로 등장하는 기업이 바로 포스코다.

포스코는 2019년 제철소 굴뚝 개방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공장 굴뚝을 여닫는 장치인 브리더를 자동으로 운영하지 않고 수동으로 한 것이 위법이라며 환경부가 10일간의 조업 정지를 명령한 것이다. 당시 처분권한은 시도지사에게 위임되어 있었는데 현대제철소가 있는 충남도는 곧바로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 경북은 그러지 않았다. 용광로를 열흘간 세우면 쇳물이 다 식어서 굳게 되는데 그것을 다 떼어 내고 재가동하려면 5개월이 걸린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의 생산이 장기간 멈추면 나라 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포스코에 물어보니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브리더를 자동으로 개방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높은 열기 때문에 자칫하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경부장관에게 이러한 상황을 강변하면서 환경부가 직접 팀을 꾸려서 해외 사례를 조사하고 처분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북은 조업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없다며 청문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방식으로 끝까지 버텼다. 결국 환경부에서는 민관협의체를 꾸려서 해외의 제철소 현장을 직접 방문했는데 모두들 브리더를 수동 개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북은 청문 절차를 종결했고 이미 처분을 내렸던 충남도는 현대제철이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패소하면서 이 사태가 끝났다.

포스코를 창업한 박태준 회장은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포항의 희생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제철소를 세우며 수많은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인내와 협조를 보내준 지역사회 덕분에 오늘날의 포스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포스코가 지주사를 만들어 서울에 두겠다고 하자 대구경북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역 정치와 행정이 기업 경영에 간섭한다며 비판하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상의 한 번 없이 이런 일을 결정하고 밀어붙인 포스코를 바라보는 포항시민과 경북도민의 심정은 한마디로 배신감이다.

포스코가 미래를 구상함에 있어서 우리 지역사회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면, 사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포항과는 어떤 비전을 만들어갈지 희망을 나눴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졌을까.

어릴 때부터 포항제철의 굴뚝을 보며 자란 한 지역 국회의원은 10여년 전 인천 청라지구에서 포스코건설이 지은 아파트를 보고 '아버지(부모님) 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미분양이 넘쳐나던 그 아파트를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약했던 그의 마음, 포항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역사와 동반하는 지역사회의 그 깊은 지지의 힘을 포스코는 간과하고 있다.

'기업을 위한 경상북도'를 외치며 정부에까지 맞서 브리더 문제를 해결했는데 포스코 최고경영진으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전화 한통도 없었다. 오히려 충청도에 있는 현대제철 사장이 안동까지 찾아와 연신 감사를 표하며 막걸리 한잔을 나누고 갔다. 그날의 씁쓸했던 막걸리 맛이 오늘날 우리 포항시민의, 경북도민의 마음으로까지 번져갈 줄이야.

차기 대통령 후보들도 하나같이 포스코 지주사의 서울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공공기관을 강제로 지방으로 이전해야 할 만큼 심각한 지방소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기관이 지방으로 오는 마당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서울로 가는 것은 시대 역행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병(病)'으로 주택, 저출생 문제 등 고질병을 치유하기 어려운데 포스코마저 병을 더 악화시키려고 하는가. 만들려고 해도 쉽게 만들 수 없는 상생의 역사와 지역사회의 지지를 포스코는 쉽게 내던지려 하고 있다.

소통은 정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포스코가 성난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답하고 지혜롭게 판단해 주길 바란다. 비온 뒤 땅이 굳듯이 포항시민, 경북도민과 함께 손잡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그런 포스코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기를, 달달한 막거리를 함께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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