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액션 장인' 리암니슨의 영화 ‘블랙라이트’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기어코 왕자의 동상 속 금 한 톨까지 앗아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올해 일흔 한 살의 리암 니슨이 또 총을 들었다. 딸을 구하기 위해 부성애를 폭발시킨 '테이큰'(2008) 이후 그는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했다. '테이큰'을 3편까지 찍으며 아내와 딸을 구해냈고, '언노운'(2011)에서는 사라진 기억을 쫓아 자신을 구해냈다. '논스톱'(2013)으로 여객기를, '런 올 나이트'(2015)에서는 아들을, '커뮤터'(2018)에서는 통근 열차를, '마크맨'(2021)에서는 알지도 못하던 멕시코 소년을 구하더니 급기야 이번 주 개봉한 '블랙라이트'에서는 손녀까지 구한다. 도대체 그의 구제(救濟) 역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블랙라이트'는 '어니스트 씨프'(2020)로 호흡을 맞췄던 마크 윌리암스가 다시 손을 잡고 찍은 영화다.

이번에 리암 니슨이 맡은 역은 FBI 비공식 요원 트래비스이다. 그는 범죄조직에 투입된 언더커버 요원들을 관리하고 위급할 때 구해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20년 넘게 조직을 위해 성실히 임무를 수행해 온 베테랑이다. 그에게 일생일대의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리암 니슨 표' 영화의 공식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항상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도발이다. 트래비스는 은퇴를 고민할 나이다. 딸과 손녀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친구이자 상관은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한 요원을 호송해 데려오는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그 요원은 조직의 비밀을 폭로하려는 내부고발자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반발하자, 조직은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가족까지 볼모로 잡는다. 그리고 트래비스의 사직서를 받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받는다.

두 번째는 단신으로 내뿜는 가공할 위력과 완벽한 일솜씨이다. '블랙라이트'에서 그는 배기량 6천㏄의 닷지 챌린저를 몰면서 깔끔한 일처리를 보여준다. 과격한 남부 인종차별주의 단체에 투입된 여성 요원이 갇혔다. 그는 현장의 물건들을 이용해 노련하게 트레일러를 폭파하면서 요원을 구해 낸다. 이제까지 영화와 달리 '블랙라이트'에서는 트릭을 쓰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감전을 일으키고, 가스 폭발을 유도하는 등 나름 맥가이버 형을 흉내 낸다.

또 하나는 가족과 사회 정의를 위한 의인으로서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정부에 맞서는 여성 정치인의 연설로 시작한다. 그러나 집으로 가던 그녀는 길 한가운데서 의문의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그녀를 죽인 것이 음모의 시작이다. 그리고 분연히 일어나 정의의 편에 선다.

리암 니슨은 2017년 "이제 액션영화는 그만 찍고 싶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테이큰'에 출연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테이큰'은 당초 저예산 오락영화로 북미에서 상영관을 잡지도 못할 정도. 한국에서 빅히트를 치고 9개월 만에 북미에 개봉해 초대박(1억4천500만 달러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은 총 누적 관객수 237만 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흥행한 국가로 기록됐다. 한국의 흥행이 전 세계 흥행을 견인한 것이다. 한국 관객의 눈높이가 대단한 것이다.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테이큰'의 아우라가 15년간이나 지속된다는 것은 역시 리암 니슨의 매력이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93㎝의 큰 키에 투박하지만 속내가 따뜻한 이웃 아저씨의 이미지가 여전히 관객의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랙라이트'를 보면서 이제 그를 놓아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의 액션 강도는 눈에 띄게 무뎌졌고, 악당을 응징하는 과정 또한 판에 박힌 상투성에 허덕인다.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너를 찾아낼 것이고, 너를 죽일 것"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혼자의 몸으로 거대한 조직과 맞선다는 플롯도 엉성하고, 개연성도 부족하다. 물론 카체이싱과 조직원과 맞붙는 총격신이 있지만, 긴장감은 예전 같지가 않다. '어니스트 씨프'가 감성적인 현실액션으로 차별화를 꾀했다면 '블랙라이트'는 리암 니슨의 전형성을 낭비하는 영화다.

그동안 리암 니슨의 이미지는 퉁명스럽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블랙라이트'에서는 광을 낸 매끈한 스포츠카를 몰면서, 액션에 기교까지 부리는 그 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간절해 보이는 것은 딸과 손녀와 함께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바람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에서 왕자는 자신의 보석과 황금을 모두 내어주고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철거된 왕자의 동상이 불길에 녹는 것까지 봐야 될까. 그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감사한 일, 이제 그만 리암 니슨을 놓아줘야 할 것 같다. 104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영화 '블랙라이트'의 한 장면. ㈜퍼스트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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