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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생생하게 전하는 초의스님 초상화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초의선사 초상', 비단에 채색, 87×54㎝,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우리나라 차의 큰 스승 초의스님(1786~1866) 초상화다. 한국의 다경(茶經)으로 불리는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을 남긴 차인으로 유명하고 정약용, 홍현주, 신위, 권돈인, 김정희, 윤정현, 신헌 등 유자(儒者)들과 나눈 교분도 유명하다.

왼쪽 얼굴이 80% 정도 보이는 좌안팔분면의 전신좌상인 '초의선사 초상'은 평상 위에 방석을 깔고 가부좌한 자세로 양손에 염주와 금강저를 쥐고 있다. 19세기 스님 진영에 많이 보이는 형식이다. 배경의 책갑, 찻주전자, 향로로 초의스님의 학문, 다도, 수행을 나타냈다. 얼굴은 평면적인데 비해 옷의 주름과 기물의 윤곽선 주변에 음영을 넣어 입체감을 준 조심스럽고 단정한 필치다.

위쪽에 화상찬(畵像讚)을 써넣었는데 표제는 '초의대선사향'(草衣大禪師響)이다. 초상화임을 나타내는 마지막 글자를 특이하게 '울림 향'(響)이라고 했고 '음(音)+경(景)'으로 썼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향(響)의 옛 글자로 한나라 때 '사신비'(史晨碑)에 나오는 예서다. 향(響)은 사방으로 울리는 메아리소리다. 우리나라 차 문화를 중흥시키고 이론을 세운 스님의 영향(影響)이 지금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메아리로 울리고 있으니 스님의 초상화와 잘 어울린다.

표제와 찬문은 무관인 신헌(1810~1884)이 짓고 썼다. 김정희 문하에서 공부해 유장(儒將)으로 불린 신헌은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해남 수영(水營)에 있을 때 스님과 만나 20여년 교분을 이어온 사이였다. 초의스님이 소치 허련의 그림 재능을 알아보고 서울로 보내 화가의 길을 열어주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도 신헌이다. 김정희에게 배워 금석문에 밝고 예서에 조예가 깊어 옛 글자체를 활용한 것이다.

전남 무안 출신인 초의스님은 나주 운흥사로 출가해 한반도 남쪽 끝자락인 해남 두륜산 대흥사(대둔사)에 주석했고 산 중턱 일지암(一枝庵)에 머물렀다. 지금의 일지암은 스님 입적 후 화재로 불타버렸던 것을 한국차인연합회에서 1979년 조자용의 설계로 복원한 것이다.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인 일지암은 수행과 차를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로 일상 속에서 통합한 암자이자 다실이다. 당나라 한산스님의 시구 '안신재일지'(安身在一枝)에서 따왔다. 저 새를 보니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는 뜻이다. 초상화가 있어 초의(草衣)에 일지(一枝)면 편안하다고 한 스님의 마음자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초의스님 초상화를 보며 햇차 나오기를 기다린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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