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잊힌 대통령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는 "정치하지 말고 농사지으라"고 권했다. 유시민 작가에게는 "정치하지 말고 책을 쓰라"고 조언했다. 반면, 친구 문재인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정치 참여를 유도했다. 문재인이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것도, 청와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을 맡은 것도 노무현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제 38일 후면 대통령 문재인은 자연인 문재인 신분이 된다. 정치판에 들어선 지 20년 만의 완전한 낙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집권 후반기 지지율이 이례적이지만,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의문부호들이 따라다닌다. 일장춘몽으로 끝난 대북 평화 프로세스, 무리한 적폐 청산, 국민 갈라치기, 폭망한 부동산 정책, 인사 참사 등 실정투성이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으니 그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실패'라고 정의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잊힌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정치사에서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후 현실 정치 무대에 숱하게 소환됐고 결말은 늘 안 좋았다. 퇴임 후 삶을 무탈하게 보낸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두 명뿐이다. 전임 대통령의 사저에 지지자들이 몰려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진영 간 대결 한가운데에 전임 대통령을 끌어들이려는 열성 지지자들 및 정치인들로부터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달성에 귀향한 박근혜 전 대통령만 보더라도 그를 둘러싼 정치적 펌프질, 후광 업기 시도가 없다 할 수 없다.

문재인은 노무현 서거 이후 쓴 책을 통해 자신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을 '운명'이라고 했다. 이제는 정치판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그의 '운명'이 되기를 바란다. 잊히길 원하는 전임 대통령은 놓아 주는 게 맞다. 그게 국민을 위해서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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