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세계가 처음 연결되었을 때 1000년

발레리 한센 지음/ 이순호 옮김/ 민음사 펴냄

아이슬란드에 있는 레이프 에릭손 동상. 뒤로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보인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레이프 에릭손 동상. 뒤로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보인다.

기하학적인 문양의 책 표지 그림. 놀랍게도 1154년 아랍의 지리학자 알이드리시가 그린 세계지도라고 한다. 이 지도는 '1000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서구 중심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미중 패권 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탈(脫)세계화'가 화두이지만, 현대 인류사는 '세계화'라는 큰 물줄기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세계화는 기원후 1000년의 세계로부터 탄생했다고 선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세계화의 시작이 1492년이 아닌 1000년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성 역사학계는 1492년 크리스토퍼스 콜럼버스가 스페인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시점을 유럽의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꼽는다. 이 시점부터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개척자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콜럼버스보다 약 490년 먼저 신대륙을 찾은 이가 있었다. 노르웨이 바이킹 '레이프 에릭손'이다.

바이킹 전설로만 이어지던 이 사실은 노르웨이 고고학자 안네 스티네 잉스타드가 1960년대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섬 최북단에 있는 랑스 오 메도즈 일대를 발굴조사하며 역사적 팩트로 밝혀냈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바이킹시대 유물인 청동 옷핀이 10, 11세기 노르웨이에서 제작된 형태와 일치했다.

또한 15세기 포르투갈 왕국의 엔히크 왕자가 서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기 전부터 아프리카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프리카의 여러 왕국이 이슬람권으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택할 정도로 무역을 중시했다. 15세기 전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간 금의 3분의 2는 아프리카산이었다. 1000년쯤 세계 최대 무역도시는 중국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 있었다. 당시 취안저우는 프랑스 파리 인구(2만 명)의 50배에 달하는 거대 국제도시였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발레리 한센은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 등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2015년 발표한 '실크로드 7개의 도시'에서 유라시아로 연결된 실크로드 교류사를 조명한 그는 이번 책에서 서구 열강이 경쟁하듯 항로 개척에 뛰어든 15세기보다 약 500년 먼저 대륙간 교역이 일어난 사실에 주목했다. 468쪽, 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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