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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속으로] 아트스페이스펄, 황인모·고려명 사진전 '탐(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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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부터 27일까지

황인모, 일월 바위2_35.991883, 129.444984.
황인모, 일월 바위2_35.991883, 129.444984.
고려명, podo20240315_100x200_ed.5-8_피그먼트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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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만난 고려명(왼쪽), 황인모 작가. 이연정 기자
전시장에 만난 고려명(왼쪽), 황인모 작가. 이연정 기자

하나의 피사체에 오롯이 집중하는 두 사진가의 독특한 사진전이 아트스페이스펄(대구 동구 효신로30)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기간과 겹쳐 열리는 전시 '탐(探)-포도·돌'은 카메라 너머 피사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열정을 담아내는 사진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담은 돌멩이

'민중의 초상' 시리즈 등 시대의 단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왔던 황인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얘기를 담은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좀 더 젊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크게 담아내려고 고민했었다"며 "그러다 언젠가부터 나를 돌아보게 됐다. 앞으로는 나와 관련된, 나의 얘기를 담은 작업들을 조금씩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속에 덩그러니 놓인 돌멩이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고향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가 나고 자란 포항시 남구 일월동은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탄생한 곳. 연오와 세오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했다는 내용인데, 그가 꽂힌 것은 '바위'였다.

"어릴 적 집 앞 해변에서 연오와 세오처럼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바위를 찾아다녔죠. 돌멩이가 커져서 바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돌을 주웠던 버릇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어요. 항상 마음 한 켠에 있던 그 상상을 작업으로 어떻게 풀어낼까 10여 년 가량 고민하다가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일월동의 옛 집 앞 해변에서 돌을 골라,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면을 정면으로 두고 사진을 찍었다. 과거를 떠올릴 때 또렷하지 않은 것처럼, 거친 입자감에서 시간이 흔적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했다. "연필로 그리는 듯 표면의 질감과 돌의 표정을 담고 싶었고, 손기술이 더해지는 과정을 통해 시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어릴 적 묻혀 살다시피 한 바닷가의 주변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며 다른 모습으로 변했지만 그 장소의 본질과 순수했던 마음은 여전하기에, 그는 돌이 놓여져 있던 장소의 좌표를 작품 제목으로 썼다. 돌을 레진에 가둔 작품 역시, 어릴 때의 추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그는 "돌은 그 때의 나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자, 변하지 않는 타임캡슐 같은 상징물"이라며 "영겁의 시간을 품은 설화와 어릴 때의 나,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스페이스펄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아트스페이스펄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아트스페이스펄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아트스페이스펄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포도

포도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포도에서 우주를, 신체를, 낯선 미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고려명 작가는 확대한 포도 사진을 통해 무한한 시·지각적 확장을 꾀한다. 어느 날 창가 위에서 햇빛에 반짝이던 포도를 찍은 이후 그의 탐미적 실험이 시작됐다. 동서양 모두 포도가 풍요와 성공, 희망, 번영, 다산 등 긍정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흑백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다양하게 변주됐다. 새하얗게 찍힌 샤인머스캣의 사진 프린트 위에 파스텔로 직접 색을 칠하거나, 일부 포도알에 금박을 입히거나, 붉은 빛 또는 분홍빛의 포도를 통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특히 냉동된 포도의 표면은 마치 달의 표면을 연상시키며, 알이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포도는 인체의 혈관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에는 전통 건축의 단청색을 포도에 대입하는, 한국적인 색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포도를 안개 발생 장치에 넣어 흐릿한 경계를 표현하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다들 포도 작품의 끝이 어디냐고 묻는데,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며 "아직도 발견 못한 좋은 결과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유럽 와인 품종 등 역사성을 지닌 포도 작업도 해보고싶다. 포도의 형태와 질감, 색 등 다양한 미적 형상을 어떻게 보여줄 지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아트스페이스펄 관계자는 "작가는 포도라는 익숙한 대상을 통해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지각하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을 극대화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심미적 경험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7일까지 이어진다. 월요일 휴관. 053-651-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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