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치영(경상북도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씨의 아버지 고 김현동 씨

"아버지 광어 먹을려면 비싸예?"…실직한 당신 난처해하시던 모습 눈에 선해

40대 중반에 첫 손녀를 안은 아버지 고 김현동 씨의 모습. 가족 제공.
40대 중반에 첫 손녀를 안은 아버지 고 김현동 씨의 모습. 가족 제공.

◆ 아버지와 냉수

5월 중순이면 선친의 27주기 기일이다. 올해도 제사상에 찬 생수를 올릴 것이다. 93년 위암수술을 힘들게 마치신 아버지께서 의식이 돌아오자 갈라터진 입술로 하신 첫 말씀. "영아 죽어도 좋으니 시원한 물 좀 다오."

1년 후 뼈만 앙상하게 마르신 모습의 아버지를 놓아드려야 했다. 병실에서 드리지 못한 냉수를 매년 기일에 맘껏 드셨으면 하는 심정으로 진설(陳設)하고 있다.

◆ 아버지와 광어

저녁약속으로 일식집에 갈 때면 수족관 속을 헤엄치는 광어를 눈물겹게 본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던 초등학교 3학년쯤인가. 30대 초반이었던 아버지와 부산에 간 기억이 있다. 아마 친척어른에게 취직 부탁을 하러 가신 것 같다. 가을 저녁 무렵, 골목어귀에서 친척을 기다리던 내 눈에 횟집 어항속의 큰 물고기와 실내에서 맛있게 회를 먹는 가족이 보였다.

아, 철없던 놈!

"아버지 저 생선이 뭔데예? 저 사람들처럼 먹을려면 비싸예?"

그때 난처해하시던 아버지의 표정과 침묵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60여 년 전 그 광어는 이 순간에도 살아서 꼬리로 철부지였던 내 뺨을 세차게 때리고 있다.

결혼 첫 해 통영여행에서 부모님과 함께. 왼쪽 첫 번째가 아버지 고 김현동 씨, 오른쪽 첫 번째가 김치영 대표이사. 가족 제공.
결혼 첫 해 통영여행에서 부모님과 함께. 왼쪽 첫 번째가 아버지 고 김현동 씨, 오른쪽 첫 번째가 김치영 대표이사. 가족 제공.

◆ 아버지와 자전거

선친께서는 울진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행정개편 된 첫 해부터 울진군에 공무원으로 부임하셔서, 약 30년 남짓 대구시 공무원으로 봉직(奉職)하셨다. 공직생활동안 많은 보직을 담당하셨으리라.

중학교 때, 아마 동화사 공원관리 책임을 맡으신 당시다. 겨울 새벽 다섯 시 경이면 짐자전거를 타고 남산동에서 동화사까지 약 2시간을 통근을 하셨다. 그때는 대구가 유별나게 춥고 더운 도시였다. 어쩌다 잠결에 자전거에 오르시던 당신을 보면 왜 그렇게 화가 났던지. 그 새벽 냉기가 싫었고,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괜히 심술 나고 못내 서러웠다. 그런데 얄궃게도 나도 고교 3년간 수성 방천길을 자전거로 통학했다.

◆ 아버지와 눈(目)

암수술 직전까지 아버지와의 팔씨름을 이겨보지 못했다. 아들이 보기엔 아버지는 신체가 정말 건장하셨고, 성정이 호방한 쾌남아셨다. 그런데도 속정이 깊고 어려운 사람을 살피는 분이셨다.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하신 유언 같은 말씀이 못내 아프다.

"내 눈을 네게 주고가면 좋겠는데…."

나는 갓난아기 때 홍역 열병으로 인해 오른쪽 시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퀭한 얼굴로 장남의 눈을 맞추시며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하신 말씀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쾌유하신다면 내 신체 일부라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자식도리일텐데….

아버지와 나는 나이차이가 스무 살이다. 선친께서는 약주가 거나하시면, '가장 어려울 때 고생을 함께 한 형제 같은 장남'이라고 듣기 거북하신 표현을 하셨다. 서울에서 본가에 내려오는 날이면 동대구역에 손수 운전해 마중을 나오셨다. 그리고 나와 평리동 우시장 안 소주 집에 늘 가셨다. 아들 눈에 좋으라고 소겹간을 미리 주문해 놓으셨다.

"아버지! 한번만이라도 뵙고 광어회 등 푸짐한 안주에 소주잔을 올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은덕으로 이 늦은 나이에도 공적소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날 철없던 불효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경상북도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장남 치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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