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대표작 28곡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18일 개봉
1979년 MBC 10대 가수상·부부 토크쇼…사전심의 철폐운동 사진 등 완성도 높아
차가운 땅에 살던 사람들 따뜻하게 안아

[{IMG01}]

1980년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저 밑에 가라앉은 슬픔과 분노, 억울함이 안개처럼 떠오른다. 더 이상 물대포를 맞지 않기를, 더 이상 지하 단칸방에서 갇혀 죽은 이들이 없기를, 더 이상 시너를 머리에 뿌려 불을 붙이는 일이 없기를…. 목 놓아 외쳤지만, 이후에도 그 슬픈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그 시대를 견뎠지만, 여전히 생각만 해도 목이 멘다. 아마 목 어딘가에 묵직하게 각인돼 반사적으로 눈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이런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가 있다. 정태춘(68)이다. 가슴을 울리는 서정성에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성을 담은 노래들로 우리들을 달래주었다. 그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음악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감독 고영재)이 개봉한다.

20대의 청년 정태춘이 서울이란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딘다. 버스 정류장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시켰다. 어떻게 먹는 건지 몰랐던 그는 메밀을 올려둔 받침에 국물을 부었다. 국물은 식탁에 쏟아지고, 그는 부끄러운 마음에 식당을 나와 버린다. 어떻게 먹는지 물어 볼 수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다.

서울이란 곳은 그렇게 아주 낯선 이름이었다. 70년대는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노래 '북한강에서')과 같은 시대였다.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북한강에서')을 만났다.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1978년 첫 음반 '시인의 마을'을 냈다. 이 음반에는 타이틀곡을 비롯해 '사랑하고 싶소', '촛불'이라는 불멸의 곡이 수록됐다. '시인의 마을'은 토속적 정감이, '사랑하고 싶소'는 모두에 대한 위로가, '촛불'은 김소월의 서정시 같은 간절함이 담겨, 차가운 땅에 살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후 2집(1980)과 3집(1982)을 냈지만 조용필의 등장과 한국 록의 시대가 열리면서 포크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진정성이 식은 것도 아니었고, 시대의 아픔이 아문 것도 아니었다.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이름으로 발매된 4집 '떠나가는 배'(1984), 5집 '북한강에서'(1985)는 더욱 깊어진 음악성으로 사람들을 울렸다.

특히 '북한강에서'는 안개 가득한 강물에 여윈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안개가 천천히 걷힐 것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가냘프지만,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그 강건함이 도도히 흐르는 새벽강에 비춰진다. 무척이나 시적인 가사로 시대를 상징했다.

영화는 정태춘의 대표작 28곡으로 그의 음악인생과 그가 서 있었던 그 대한민국의 시대를 그려낸다.

80년대는 늘 함께 모였다. '흩어지면 죽는다'고 노래했다. 학생운동에도 노동운동에도, 1987 6월 항쟁의 역사적인 현장에도 정태춘은 자리했다. 7집 '아, 대한민국'(1990),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1992)에서는 정부의 대중가요 검열의 칼과 맞섰다. 검열에서 그의 노래는 늘 '순화 개작', '전면 개작' 판정을 받았다. 7집을 낼 때 검열 거부를 선언하고 비합법적인 유통을 선택했다. 급기야 8집을 낼 때 정부로부터 법률 위반으로 고소를 당한다. 그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가요 사전심의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는 2006년 고향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시위를 끝으로 음악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가 다시 활동하기까지의 40년 삶을 밀도 있게 담고 있다. 고영재 감독은 그의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979년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 부부가 함께 출연한 토크쇼, 공연 자료 등과 함께 사전심의 철폐운동을 비롯한 사회 참여 현장의 사진들까지 완성도의 밀도를 높였다.

고영재 감독은 2007년 '공동체 상영'이라는 배급방식으로 개봉한 '우리 학교'의 제작자로, 2009년 '워낭 소리'의 제작과 프로듀싱에 참여했으며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그가 직접 감독을 맡은 첫 작품이다.

'아치의 노래'는 2002년 앨범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에 수록된 곡으로 자신의 노래가 새장 안에 갇힌 '양아치'라고도 불린 새의 노래 같다는 자조 섞인 가사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이 칠순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그의 진정성과 어울려 감동을 주는 웰 메이드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20대 그의 목소리가 아직 여전한 것도 놀랍다. 18일 개봉 예정. 113분. 전체 관람가.

영화평론가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한 장면. ㈜NEW 제공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