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상연습의 한계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기자는 사단 사령부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전시(戰時) 이동 규정은 차량 탑승이었다. 그러나 전투력 측정(ATT) 때 20㎏ 완전 군장에 10㎞를 1시간에 주파해야 하는 구보(驅步)는 빠지지 않았다. "통신병은 전시 차량 이동인데 왜 구보 훈련을 해야 하느냐"고 투덜대자 선임하사가 타이르듯 말했다. "이동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서 차량이 갑자기 고장 나거나 적이 침투해 파괴해 놓았으면 어떻게 할 거냐? 뛰어서라도 가야 할 것 아니냐?"

실제로 그렇다. 전투는 수많은 변수로 가득해 FM(야전교범)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가변성은 최적의 전략·전술 마련을 위해 가상의 전장(戰場)에서 아군과 대항군이 전투를 벌이는 도상연습(圖上演習)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9~1871.5.10)에서 프로이센은 단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크릭스슈필'(Kriegsspiel)이란 '워 게임'(war game)을 개발해 모든 실전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장교를 훈련시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독일 통일 후 1차 대전에서는 도상연습대로 되지 않아 큰 낭패를 봤다.

독일 참모본부는 프랑스를 치기 위한 선제 작전으로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하는 도상연습을 했다. 그 결과 탄약만 제때 보급되면 프랑스에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철도를 이용한 보급 부대를 창설해 전투에 투입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먹혀들지 않았다. 벨기에 공작원들이 자국 철도망을 파괴해 독일의 보급선을 끊은 것이다. 독일은 이를 생각지도 못했다.

이는 도상훈련은 아무리 정밀하게 설계해도 실전(實戰)이 만들어내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에 넣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실전의 이런 천변만화(千變萬化)를 독일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는 말로 정리했다. "전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고 많은 부분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병력과 장비를 실제 기동하는 한미 연합훈련이 22일부터 시작됐다. 2018년 문재인 정권이 한미 연합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든 지 4년 만이다. 그 사이 한미 연합 작전 능력은 상당히 손상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생각할수록 문 정권의 안보 자해에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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