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백(望百)을 앞둔 나이에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업인이 있다. 주인공은 안동 출신의 류목기 풍산홀딩스 고문이다. 확고한 인생관과 경영 철학, 특히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코 걸어갈 수 없는 길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류 고문은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키라"고 강조했다. 또 "오너가 아니라 조직을 위해서 일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퇴계 이황의 경(敬) 사상을 설명하며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역설할 때는 삶과 경영의 '구루'(Guru·참 스승)를 보는 듯 했다.

-먼저 풍산그룹에서의 역할이 궁금하다.
▶풍산그룹 창업주 되시는 류찬우 회장님 때 인연을 맺어 대표 겸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고문 겸 학교재단 이사장이다. 대외적인 업무와 자문이 주된 일이다. 특히 회사에서 운영하는 풍산 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서 고향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집 나이가 90인데, 이 나이에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풍산하면 아무래도 방위산업 쪽에 관심이 간다. 현재 위상은 어느 수준인가?
▶우리 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총‧포탄약을 독자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 수출 중이며, 특히 2006년도에는 엄격한 품질을 요구하는 미군에 풍산 탄약을 공급해 그 품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방산분야 최강인 미국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다. 아울러 우리 풍산은 미국 스포츠탄 시장에서 탑3다. 소총탄부터 전차 및 곡사포 탄약에서 대구경 탄약까지…. 명실상부한 세계적 종합탄약생산업체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국산화로 자주국방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첨단탄약 전문기업으로 급부상했다. 노하우가 있다면?
▶최근 AI(인공지능) 첨단 군사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풍산도 첨단 탄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적(敵)지역 상공에 투하해 관측할 수 있는 관측탄약, 휴대용 전투드론 등 미래 전장(戰場) 상황에 필요한 다양한 첨단 탄약 등을 개발 중이다. 이런 성과는 1970년 초부터 방위산업에 참여해 쌓아온 탄약생산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산업보국(産業報國)이라는 기업정신을 바탕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해외 진출은 어느 정도인가?
▶세계 6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방산 전체 매출의 50%가 넘는 물량을 해외 각국에 수출한다. 앞으로도 더욱 비중을 높여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또 K계열 무기체계(K2전차, K9자주포, KF21항공기 등)의 세계시장 수출과 병행해 해당 무기체계에 사용하는 탄약도 패키지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역대 정부 누구도 해법을 찾지 못한 노동개혁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한마디로 말하면 솔선수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업이든 노조든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하려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나. 당시 풍산의 울산 공장 가동률이 반으로 떨어졌다. 적자 폭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적자를 최소화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노조위원장을 만나 회사 사정을 상세히 얘기해줬다. 그러고는 나부터 흑자로 돌아설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퇴계의 경(敬) 사상은 류 고문 삶의 근본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경영 원칙으로도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힘이다. 노사분규가 극심할 당시 일화가 있다. 사업장별 노조를 포함 모두 5명의 노조위원장이 자택으로 몰려온 적이 있는 데 다음 날 극적인 타협을 이뤘다. 술 한 모금 하지 않는 류 부회장이 집에 있던 술 2병을 내놓았을 뿐이었는 데 가구도 변변치 않은 서민형 주택에서 사는 진솔한 모습을 보고 신뢰감이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직원들과 가정의 건강과 안정을 위해 보험에도 적극 가입하는 경영을 했다. 회사가 할 도리라는 믿음에서였다. 류 고문이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는 수억원대의 퇴직금을 노조원 자녀들의 학자금으로 쓰라고 내놓은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류 고문은 "밝히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100세 시대라지만 고령에도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것이 인상적이다. 건강 비결을 귀뜸해 주신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 바로 '소식'(小食)과 '다동'(多動)이다. 제 선조께서 하신 말씀이기도 한데, 실천하며 옳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식사 때는 탄수화물인 쌀을 최대한 적게 먹는다. 아마 커피 잔 절반 양이나 될까. 그리고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1시간씩 등산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외가 없다. 출장으로 타지나 해외에 갈 때도 운동화를 챙겨 아침에는 꼭 걸었다.

-대구경북 출신 후배 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풍산에 와서 임원들에게 오너가 아닌 조직을 위해 뛰고, 사주(社主)맨이 아닌 풍산맨이 되라고 했다. 회사를 위한 임원이 돼야지 않겠나. 사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임원은 임원이 아니라고 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원칙주의자인 류 고문이 결기와 강단을 보여준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임원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를 통해 인사 청탁을 한 경우가 있었다. 류 고문은 굴복하게 되면 '풍산 인사는 청와대가 한다'는 악습과 오명을 얻게 된다는 점을 들어 거부했다. 정권의 힘이 서슬 푸르던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청탁 당사자는 결국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대학 재학 때는 15일 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위장병을 고치기 위해서였고, 건강해졌다. 이 단식기는 매일신문에 2차례 실렸다.
-미래 세대에게 꼭 들려주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라. 사람다운 사람이 무엇이겠나. 퇴계 이황 선생의 경 사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미래세대에게 경 사상을 머리에 담고 행동하라고 말하고 싶다.
■ 류목기 상임고문과 장학사업
류목기 고문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직과 삼성그룹 계열의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행정부원장, 한솔상호저축은행 은행장 등을 거쳤다. 신현확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 시절 의료보험 도입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이시형 박사와 호흡을 맞춰 종합건강검진 시스템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고려병원이 커나가던 시절 그룹 차원의 고강도 감사가 6개월 넘게 진행되는 곤욕을 치뤘다. 사소한 일로 꼬투리를 잡으려 했지만, 의약품 리베이트를 없애 원가를 절반 가까이 절감한 사실 등이 확인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풍산으로 영입된 뒤에는 현장 외길을 뛰고 있다. 류 고문은 "물러나야 하는 데 잡혀 있다. 건강이 정년인지…"라며 웃었다.
1968년 창립한 풍산은 국내 최초 현대식 신동 공장을 준공하고 대한민국 소재산업 분야를 개척해 전기, 전자, 반도체 등 산업 인프라 구축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1972년 방위산업을 시작해 탄약 국산화와 품질개선, 신형탄약 개발로 자주국방과 군 전력증강에 기여하는 기업이다.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을 역임하며 고향 발전에 힘써온 류 고문은 병산교육재단과 대경육영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그룹에서 운영하는 풍산중·고 이야기가 나오자 류 고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고향과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만한 것이 없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 보람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풍산고는 경북을 넘어 전국에서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의 손녀도 풍산고를 나와 서울대 심리학과에 진학했고, 영국의 명문인 런던대 유학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미완의 꿈이 하나 남았다. 바로 대경학사 건립이다. 단순 기숙사가 아닌 사관학교처럼 운영하고, 지역인재 네트워크 중심 축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호남의 남도학사를 언급하며 건립 필요성과 당위성을 거듭 역설했다. 류 고문은 "대한민국에 빌 게이츠가 있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며 "대구경북의 영광을 되찾는 길은 인재 양성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후배들은 꼭 학사건립을 이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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