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5년 간 무려 2만7천여 명 졸업생을 배출한 계림초등학교. 계림초교가 '경주를 대표하는 교육의 최고 요람이자 국내 가장 유서 깊은 학교'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계림초교는 1907년 4월 1일 대한제국 고종황제 칙령에 따라 경주군 교동리 현재 경주 향교 부근에서 개교한 4년제 '공립 경주보통학교'가 전신이다.
당시 경주보통학교는 전교생 62명으로 개교했고 2년 뒤인 1909년 1회 졸업생 10명을 배출하면서 파란만장한 115년의 역사를 시작했다.

비공식적으로는 앞서 경주향교 부속건물인 육영재에 설립된 '경주공립소학교'가 계림초교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1896년 조선 정부가 '전국에 38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관보 424호 학무부령 5호로 지방공립소학교 설립을 공표 했는데, 경주공립소학교도 이때 설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 한일합병 결과로 한국인 교장이 일본인 교장으로 교체됐고 학교명도 '경주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다.
1921년에는 학교가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면서 전교생 수가 367명으로 늘었고, 교사가 현재의 성동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제대로 된 건물을 갖췄다.
1927년 일제의 남녀분리 정책에 따라 현재의 월성초교인 경주여자공립보통학교가 생기면서 계림초교는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가 되었다가 1945년 다시 남녀공학이 됐다.
1938년 신라왕 김알지의 전설이 얽힌 '계림'을 따서 '계림공립 신상소학교'로 명칭을 바꾼 뒤 1941년 '계림공립초등학교'로 개명했다.
1945년 해방된 해, 계림국교는 23학급에 학생수 1천578명에 달하면서 영남 제일의 명문 국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계림국교가 육군병원으로 징발됐고, 이에 학생들은 한동안 천막수업을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도 학생수는 꾸준히 늘어 전쟁이 끝난 1955년에는 전교생 수가 2천명에 달했다. 이에 당시 육성회는 현재 교정이 있는 북부동 부지를 매입해 신축에 나섰다.

1963년 북부동 신축교사가 완성되면서 8년 간 1·2교사 분산 수업을 하던 학교가 통합됐다. 이때 학생 수가 42학급 3천500여 명. 한 반 출석부에 무려 93명이 등록됐다.
1960년대에는 계림국교뿐 아니라 인근 시내의 월성·황남국교에 각각 있던 야구부가 경주중·고 야구부 전국 우승의 인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당시 계림국교 운동장에서는 야구대회가 빈번하게 개최됐고 시내 골목길에서도 많은 어린이들이 글러브를 끼고 야구를 즐겼다.
1970·80년대까지 번창하던 계림국교는 1990년 중반 이후 도심 공동화에 따른 시내 인구 감소와 인접 경주읍성 복원사업으로 상가·주택가가 철거되면서 학생 수가 급감했다.
현재는 각 학년 1개 반에다 전교생도 136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자 총동창회는 계림초교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박동섭(54회) 총동창회 부회장은 "경주 시내의 월성·황남·화랑·흥무초교 등은 모두 과거 계림초교에서 갈라져 나갔다. 그 중 황남초교는 용황동으로 이전했고, 월성·화랑초교는 모두 학생수 감소로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흥무초교를 제외한 경주시내 초교생 수는 1개 초교를 겨우 유지할 수준"이라면서 "경주 초교의 모체인 계림초교는 어떤 이유에서든 존속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현재 공사현장으로 변한 계림초교 주변 교육 환경에 대해서는 "조만간 경주읍성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계림초교는 긴 역사에 걸맞게 뛰어난 졸업생도 셀 수 없이 많이 내놨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김수학 전 경북도지사, 박홍(전 서강대 총장) 신부, 김하경 전 철도청장, 이현우 전 영남대의료원장, 박두태 전 서울시립대 경영대학장, 서수종 전 국회의원 김진세 전 부산지검장, 정연주 전 KBS 사장, 김석기 현 국회의원, 백복인 현 KT&G 대표이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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