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경우의 수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월드컵만 시작하면 우리 국민은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수학 문제를 푸느라 끙끙 앓는다. '경우의 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방법의 수'로 간결하게 정리한다지만 수학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실전에 활용되면서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 역사에 비례해 숱하게 출제됐다. 이쯤 되면 '경우의 수'는 '숙명'이다.

'경우의 수'를 따지고 싶지 않았기에 첫 경기의 중요성은 반복됐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는 속담이 인용됐다. 초반의 기선 제압으로 여세를 몰아 승리하자며 선제골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됐다. 1986년부터 2018년까지 아홉 번의 월드컵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승리한 건 단 세 번이었고, 16강 진출로 연결된 건 두 번(2002, 2010년)이었다.

하지만 첫 승으로 해갈이 되던가. 다음 경기까지 승리해 안전지대에 들어서자 한다. 마지막 경기까지 이겨 조 1위로 진출해 8강까지 대비하자는 주문도 잇따라 나온다. 게다가 2승 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못 가는 경우도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이번 월드컵의 최대 이변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제골을 내주고도 아르헨티나라는 대어를 낚았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16강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일 뿐이다. 아르헨티나도 첫 경기의 패인을 분석해 분발하면 결승까지 오를 수 있다.

199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 카메룬에 패한 뒤 결승까지 올랐다. 반면 2002년에는 첫 경기 나이지리아를 잡고도 16강에 못 올랐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결승까지 올랐던 이탈리아는 첫 경기 아일랜드에 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 스페인도 마찬가지. 첫 경기 스위스전에 0대 1로 패했지만 우승했다. 스위스는 첫 경기를 잡고도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스포츠에서 이변은 관중이 열광하는 원천이다. 약체의 대반란에 전율한다. 객관적 전력 차이는 존재하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당연한 것은 없고 붙어 봐야 안다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우루과이와 첫 경기를 앞둔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응원하는 이들은 설령 우리가 지더라도 낙담하기 없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만국 스포츠 공통의 격언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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