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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이웃사랑’과 공감 능력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매일신문이 20년 동안 연재하고 있는 '이웃사랑' 코너에는 매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소개된다. 소싯적 기자도 '이웃사랑' 담당 기자로 여러 이웃들을 만났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이들은 대개 심신이 지쳐 있다. 예상치 못한 병마는 삶의 의지를 느슨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웃사랑' 취재기자는 이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들으며 함께 아파한다. 소개된 이들 중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몸이 불편하면 어두운 면이 부각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준 아이들이었다. 너무도 밝았기에 취재 도중 당황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조금만 도우면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도우려는 금액이 많을수록 삶의 의지도 강해질 거라는 판단이다. 평생 갈고닦은 문장력의 빈약함을 자책하다가도 낙관적인 이들의 얼굴이 겹치면 전력을 다해 사연을 소개한다. 때론 목표액보다 성금이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취재기자의 현란한 문장보다 사진 한 장이 독자의 공감대를 넓히는 경우가 많았다. 독자의 시선부터 붙잡아야 문해력이 작동했다. 사진기자도 단 한 장의 사진일지언정 혼을 갈아 넣었다. 그렇다고 특정 장면을 연출하자니 서로 불편해지고, 민망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싣는 게 가장 좋았지만 그럴수록 이들의 신체적 불편은 커졌다.

오랜 기간 '이웃사랑'을 봐 온 독자들은 감사하게도 이런 과정을 알아봤다. 회사로 전화가 적잖게 걸려왔다. 감성의 영역을 한껏 부풀려 공감하며 돕겠다는 이들이었다. 간혹 논리적 질문도 있었다. 병명과 증상, 대처 방식이 통상적인 치료와 다르다며 안타까워하는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사진을 지적하며 "안 아파 보이는데 아픈 척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은 없었다. "불필요한 조명 효과로 더 아파 보이게 찍으면 어떡하느냐"는 이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병을 앓는 14세 소년 로타의 집을 방문한 사진에서 오래전 '이웃사랑' 풍경들이 겹쳤다. 난데없이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빈곤 포르노"라 저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장 의원은 조명을 설치해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로타의 집 주소를 대사관에서 왜 안 알려주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직접 찾아가 돕겠다는 투였으나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자는 의도는 온데간데없다. 공감 능력을 강조하던 정당이 민주당 아니었나. 의혹도 의혹 나름이다. 로타에게 얼마나 가혹할지 생각해 봤나 되묻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곧 국내 유명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럿이 재능을 합치면 해결 못 할 일도 없다. 십시일반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임을 다시 한번 자각한다.

'이웃사랑'에 소개됐던 아이들의 희망찬 말들은 14년의 세월에도 마음속에 강하게 음각돼 있다. "건강해져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주변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밝게 보고 있다는 데 감사했다. "꼭 그렇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헤어졌던 그날들을 곱씹는다. 14년 전 소개된 이들 중 일부는 건강히 자라 '이웃사랑'에 익명으로 성금을 보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로타도 건강하게 자라서 한국을 기억할 때 빈곤 포르노의 수치심보다 십시일반의 기적을 먼저 떠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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